“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오늘 예레미야서의 주님은 매우 명령적이고 강압적인 것 같고,
그래서 폭력적인 임금이나 매우 엄한 아버지 같은 인상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내 말을 들어라.” “내가 명령하는 길만 걸어라”
이런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신이 명령하는 길만 걸으라고 하시는 말씀은
학교 가는데 길이 많지만 꼭 이 길로만 가라는 말씀,
다양성과 자유를 허용치 않는 말씀처럼 들려 답답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진정 큰 길 작은 길 가리지 않고 일일이 다 간섭하여
우리의 숨을 탁탁 막히게 하시는 그런 분일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길이 많습니다.
부산 가는 길, 광주 가는 길, 중국 가는 길, 필리핀 가는 길.
부산 가는 길도 기차 타고 가는 길, 버스 타고 가는 길,
버스 타고 가는 길도 경부선, 중앙선 등 여러 길이 있고,
학교 가는 길도 있고, 놀러가는 길도 있으며,
일하러 가는 길도 있고, 성당 가는 길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길을 지정하신다는 말씀이고
성당만 가고 놀러 가지는 말라는 말씀일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 모든 길을 일일이 다 지정하여
당신이 주신 자유의지를 아무 쓸모없게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하게 하시는데
어떤 길을 선택하든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어떤 길을 가든 행복의 길을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아무리 길이 많아도 그 길은 둘 중의 하나이며
생명과 행복의 길과 죽음과 불행의 길, 그 둘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더 엄밀히 얘기하면 두 개의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생명과 행복의 길 하나뿐인데
그 길을 안 가면 그것이 죽음과 불행의 길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우리 신앙인에게는 한 가지 길, 곧 하느님께로 가는 길만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생명과 행복의 길만 있으며
그 절대적인 길을 가지 않을 때 그것이 곧 죽음과 불행의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에서
당신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당신이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주님 편에서 하고 주님과 함께 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리하도록
다른 사람도 주님께로 모아들여 하고
그래서 주님의 길을 같이 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악령처럼 주님 반대편에 서 있지 않으니
주님 편에 서 있다고 하고 싶으나
실은 악령도 주님도 선택하지 않고 <나>라는 회색지대에 머뭅니다.
이런 우리에게 회색지대는 없다 하시는 주님 말씀을 명심하는 오늘입니다.
3월 11일 미사를 통하여 신부님을 처음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인사도 못드렸습니다.
신부님께서 미사 중에 성가를 부르시는 모습에서 음치인 제가 깨달은 것은
"하느님 사랑합니다."라고 읽는 것과
"하느님 사랑합니다"라고 노래 부르는 것이 다르구나 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미사 때 그 가사를 의미를 마음으로 새기고 소리 내보려고 하는데...
3월 11일 이후로 인사드려야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저의 게으름이 오늘에서야 인사드립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에서도
제가 이제라도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가기를!
주님 반대편에 서 있지 않는 것을
나는 그래도 주님 편이라고
제 자신에게 속사이면 안된다는 것을
마음으로 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