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렐루야!
드디어 부활이다!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부활의 잔잔한 기쁨과 감동이
오래동안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
우리 크리스천 삶은 본질적으로 부활을 살고 선포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이 부활 신앙의 본질, 즉 내용은 무엇인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즉, 빈 무덤을 보았다는 것,
더 정확히는 그래서 예수께서는 살아계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신앙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살아계신 그분을
증거할 때만 의미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부활의 목격자들은
어떤 자세와 태도의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예수 부활의 목격증인 제1그룹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 사도이다.
이 세분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각별한 애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계속 언급되고 있는데
예수님의 수난 여정과 부활 사건을 통해서는
야고보가 빠지고 주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그 중심에 등장한다.
그러면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부각은 눈여겨 볼 만하다.
어쨌든 이 세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 세분은 누구보다 예수의 사랑을 받은 제자들이고
그래서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했던 제자들이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일곱마귀가 들었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고 나서부터
줄곧 예수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든 여성 제자 그룹의 대표였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을 정도로
예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바칠 정도로
예수를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예수의 십자가 상에서도
그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했던 여인이었고,
마침내 오늘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사랑하는 예수가 보고파서
여자의 몸으로 홀로 예수의 무덤을 찾을 정도로
정말 예수를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요한은 또 누구인가?
자기 스스로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늘 예수의 행적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복음으로 기록할 정도였고
십자가상에서 예수를 동반하였고,
그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 역할을 대신할 정도로
예수의 친 동생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예수의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한 제자였다.
베드로 사도는 죄많은 약한 위인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했던 제자였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한 수제자였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적은 있지만
대사제 안나스의 집까지 들어갔던 유일한 제자였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 세 번에 걸쳐
<너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당하게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고 고백할 정도로
정말 예수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제자였다.
이렇게 세분의 공통점은 예수의 사랑을 받았음과
그로 인해 예수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부활의 목격 증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이것이다.
능력있고 열심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예수 부활의 목격 증인들의 내면적인 자세는
특별히 <겸손>이라 이름할 수 있는 자세이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면서도
역사 안에서는 뒤에 숨어있는 조력자로서
자신을 감추고 있는 분이시다.
요한 사도는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지만
젊어서인지 먼저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형님이요 으뜸 사도인 베드로에게
두 번째 목격 증인이 될 기회를 넘겨주고
자신은 세 번째 목격 증인으로 남는다.
이것이 예수 부활의 목격 증인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자세이다.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예수 믿으시오!> 하고 떠벌리며 증거해야 하는가?
<알렐루야!>를 고함만 친다고 증거가 되는 것일까?
아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최상의 방법은
<겸손>이다.
우리의 겸손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예수가 참으로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게 된다.
이렇게 예수 부활은
우리에게 사랑과 겸손을 요청하는 사건이다.
우리가 더욱더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과
더욱 겸손하게 작은자가 되는 길이
곧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는 길이 된다.
사순절 동안 희생 극기하면서 열심히 살았으니까
이젠 좀 즐기자가 아니라,
이제부터 제대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자.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그래야 진정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것이 된다.
우리 안에서 말이다.
아멘. 알렐루야!
* 부활 축하합니다.
드디어 부활이다!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부활의 잔잔한 기쁨과 감동이
오래동안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
우리 크리스천 삶은 본질적으로 부활을 살고 선포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이 부활 신앙의 본질, 즉 내용은 무엇인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즉, 빈 무덤을 보았다는 것,
더 정확히는 그래서 예수께서는 살아계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신앙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살아계신 그분을
증거할 때만 의미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부활의 목격자들은
어떤 자세와 태도의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예수 부활의 목격증인 제1그룹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 사도이다.
이 세분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각별한 애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계속 언급되고 있는데
예수님의 수난 여정과 부활 사건을 통해서는
야고보가 빠지고 주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그 중심에 등장한다.
그러면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부각은 눈여겨 볼 만하다.
어쨌든 이 세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 세분은 누구보다 예수의 사랑을 받은 제자들이고
그래서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했던 제자들이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일곱마귀가 들었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고 나서부터
줄곧 예수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든 여성 제자 그룹의 대표였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을 정도로
예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바칠 정도로
예수를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예수의 십자가 상에서도
그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했던 여인이었고,
마침내 오늘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사랑하는 예수가 보고파서
여자의 몸으로 홀로 예수의 무덤을 찾을 정도로
정말 예수를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요한은 또 누구인가?
자기 스스로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늘 예수의 행적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복음으로 기록할 정도였고
십자가상에서 예수를 동반하였고,
그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 역할을 대신할 정도로
예수의 친 동생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예수의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한 제자였다.
베드로 사도는 죄많은 약한 위인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했던 제자였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한 수제자였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적은 있지만
대사제 안나스의 집까지 들어갔던 유일한 제자였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 세 번에 걸쳐
<너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당하게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고 고백할 정도로
정말 예수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제자였다.
이렇게 세분의 공통점은 예수의 사랑을 받았음과
그로 인해 예수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부활의 목격 증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이것이다.
능력있고 열심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예수 부활의 목격 증인들의 내면적인 자세는
특별히 <겸손>이라 이름할 수 있는 자세이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면서도
역사 안에서는 뒤에 숨어있는 조력자로서
자신을 감추고 있는 분이시다.
요한 사도는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지만
젊어서인지 먼저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형님이요 으뜸 사도인 베드로에게
두 번째 목격 증인이 될 기회를 넘겨주고
자신은 세 번째 목격 증인으로 남는다.
이것이 예수 부활의 목격 증인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자세이다.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예수 믿으시오!> 하고 떠벌리며 증거해야 하는가?
<알렐루야!>를 고함만 친다고 증거가 되는 것일까?
아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최상의 방법은
<겸손>이다.
우리의 겸손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예수가 참으로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게 된다.
이렇게 예수 부활은
우리에게 사랑과 겸손을 요청하는 사건이다.
우리가 더욱더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과
더욱 겸손하게 작은자가 되는 길이
곧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는 길이 된다.
사순절 동안 희생 극기하면서 열심히 살았으니까
이젠 좀 즐기자가 아니라,
이제부터 제대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자.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그래야 진정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것이 된다.
우리 안에서 말이다.
아멘. 알렐루야!
* 부활 축하합니다.
모든것을 다~아 사랑하며,나의 마음으로 하지않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부활덕분?에 ,
정동에서,김밥맛있게 먹고,
부활계란 한꾸루미? 선물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감사드림니다.!!!!
마중물신부님께서 안계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