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고서 이번에 와 닿은 것은
뒤에야 깨닫는 우리라는 것인데 다음 말씀 때문입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미리 깨달으면 얼마나 좋고,
미리가 아니라 뒤늦게 깨닫지만 않아도 참으로 좋으련만
우리의 깨달음은 많은 경우 어떤 일을 겪고 난 뒤에야,
그것도 안 좋은 일을 겪고 난 뒤에야 깨닫습니다.
특히 큰 깨달은 큰 실수를 하고 난 뒤에 깨닫고
세월로 치면 엄청난 시간을 대가로 치루고 얻습니다.
그런데 이 실패의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냥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은 대가없이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어려움 없이 얻으려는 것은 얌체와 같은 자세지요.
가치 있는 것은 큰돈을 주고 사야 되는 것처럼
가치 있는 깨달음도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지요.
그럼에도 명품백은 큰돈을 주고 사고도 출혈이 컸다고 하지 않지만
나라의 독립이나 민주주의 같은 것은 그것을 얻어서 기쁘긴 했지만
이를 위한 출혈이 너무 컸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정상입니다.
명품은 자기가 너무 갖고 싶은 것을 산 것이기에
돈을 잃었다고 생각지 않고 명품을 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대가를 치렀어도 돈으로 대가를 치른 것이지
출혈, 그러니까 피를 흘리기까지 대가를 치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깨달음을 비롯하여 무릇 모든 것은 잃어야 얻는데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건강을 잃어야 깨닫고,
세상 것을 다 잃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직접 뵌 분입니다.
산청 성심원에 계셨던 할아버지 얘기입니다.
그분 얘기를 다 할 수 없지만
오늘 얘기와 관련하여 골자만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본래 의사였지만 나병에 걸리셨습니다.
그러나 의사였기에 한동안 혼자 스스로 치료를 했는데
옛날 약도 변변한 약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나병환자들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국가가 약을 통제하자
아무리 의사여도 약을 제대로 구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나병의 증상이 겉으로 드러날 즈음 병원도 처분하고
자식들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집을 나와 유랑생활을 했습니다.
유랑생활의 고달픔과 육체의 고통도 컸고 무엇보다도
의사대접을 받다가 인간대접도 못 받는 괴로움 때문에 자살도
여러 번 시도했는데 이 마저도 실패하자 체념하고 성심원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렇게 좌절이나 절망을 넘어서 체념을 하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강요하지 않았지만 성심원의 분위기가 신앙의 분위기였기에 할아버지도
차츰 이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성경을 공부삼아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신다는
말씀에서 하느님 체험도 하고 인생을 바꾸는 큰 깨달음을 얻으셨으며
방문한 이들에게 당신이 체험한 하느님과 깨달음을 전하는 분이 되셨습니다.
나병 때문에 가족과 건강과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잃었지만
가장 소중한 하느님을 얻었기에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랑하시니
누가 하느님 나라 행복을 얘기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되었지요.
우리도 큰 대가 없이 소중한 것을 얻으려 하지 말고
적당히 해서 하느님 체험하고 깨달음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서국가가 약을 통제하자"라는 부분에서 국가가 그럴 수 있나 ...일제강점기인가...
그 다음에 든 생각이...전국민 의료보험이라고 하는데...꼭 먹어야 하는 치료약을 돈때문에 먹지 못한다면..
그리고
"적당히 해서 하느님 체험하고 깨달음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라는
도전의 말씀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라는 고백을 또 생각해봅니다.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