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묻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든 정치지도자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역시 이스라엘 사람답게 베드로가 병자를 고쳐준 것이
베드로의 힘으로 그리 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자기의 힘이나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겸손을 떨지 않고
주님의 힘과 주님의 이름으로 하였다고 성령으로 가득 차 말하는데
이것은 자기 힘이 완전히 빠진 자, 성령으로 가득한 자로서 하는 말입니다.
사실 대단한 일을 하였다고 누가 저에게 얘기할 때
제가 한 것 별로 없다거나 저는 별로 힘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실 겸손한 것이 아니기 쉽고 겸손을 떠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드로처럼 자기의 힘이 너무도 없음을, 특히 살리는 것에 관해서는
더더욱 아무런 힘이 자기에게 없고 오직 하느님에게 있음을
체험을 통해 절절이 아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의 힘을 들먹이지 않고
바로 하느님의 능력을 얘기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베드로를 이렇게 만든 것이 바로 고기잡이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루려던 그 세속적인 성취가 물거품이 된 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 뒤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갈릴래아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행동을 보면 갈릴래아로 돌아가라 하신 주님의 뜻을
제자들이 잘 알아듣고 갈릴래아로 돌아간 것이라기보다는
이제 모든 것이 다 끝장이 났으니 다시 옛날로 돌아간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옛날 자기들이 하던 그 고기잡이를 하러 갔는데
밤새도록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은 예루살렘에 간 것이
실패로 돌아가고 모든 것이 허사가 된 것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우리 인간의 일이라는 것이 하느님 없이 하면 허사가 되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 없이 하면 더더욱 허사가 되기 마련이지요.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자기의 힘을 완전히 빼지 못하고 얼마간
자기의 힘으로 뭔가 하려다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뒤에야 깨닫습니다.
이것은 다른 누구의 얘기가 아니고 저의 얘깁니다.
관구장의 직책을 마치기 1년 전쯤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가능하면 낮기도 전 30분 정도를 묵상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는데
혼자 그렇게 묵상을 할 때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은총인 듯
그렇게 따듯하게 느껴지며 괜히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이랄까 느낌이
<왜 내가 이렇게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나?>하는 것이었고,
<이제는 다 놓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젊은 나이에 관구장을 하면서 참으로 의욕이 많았고
정말로 잘해 보려고 그렇게 노력을 많이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특히 매년 형제들이 환속을 하는데 제 힘으로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형제들이 나가는 것이 다 제가 관구장을 잘못해서 나가는 것 같아
너무도 괴로워하고 좌절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고
그로 인해 매우 지쳐가던 때였는데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통해 깨우침을 주신 겁니다.
머리로는 내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하자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늘 내 힘으로 하려 하였던 것을 깨닫고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자 평화가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간 잘못 살았던 제가 참으로 불쌍하게 느껴져 눈물이 나오고,
이런 저를 깨닫게 해주신 하느님의 은총이 고마워 눈물이 나온 겁니다.
이것이 제 2의 인생,
하느님의 일을 진정 하느님의 힘으로 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
저의 허사 체험이자 은총 체험이자 부활 체험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총 체험과 부활 체험이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