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안티오키아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사도행전은 전하는데 이 말을 들으면서 생각해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교인이란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그리스도교 교단 어디에 속한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껍데기는 그렇지만 그리스도인 같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참으로 많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진정 그리스도인다운지를 얘기하는 것이겠지요.
이에 대한 답이 사실은 오늘 복음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따르는 양들이고,
그러기 위해서 자기 목자를 알고 믿는 양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희 수도원에 어린 형제들은 요즘 이상한 머리 유행을 따라갑니다.
제 눈에는 그것이 걸립니다.
우스꽝스럽고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수도원 들어온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야지 아직도 밖의 사람들처럼 그것도 애들처럼
유행을 따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도 그 나이 때 당시 유행인 장발을 한 적이 있지요.
프란치스코를 따르겠다고 그렇게 프란치스코 흉내를 내면서도
정부의 장발단속에 대한 반발로 일부러 더 머리를 기르고 다녔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그 유행을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행을 따르는 것이 유치해보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나의 길을 가지 않고 남의 뒤를 따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때는 더 프랭크 시내트라의
나의 길(My Way)이라는 노래를 좋아했지요.
그런데 나의 길을 간다는 것은 남의 꽁무니나 따르지 않겠다는 뜻도 되지만
어쩌면 주님도 그리고 누구도 따르지 않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뜻도 있지요.
우리는 속도 없이 남의 뒤니 따르지 않고
그렇다고 독불장군처럼 나의 길을 가겠다고 하지도 않고
진정 주님의 길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이제 마음으로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고자 하나 십자가가 싫어서
아니, 십자가 지는 것이 두려워서 멈칫하고 주저합니다.
작은 형제회의 첫 번째 순교자가 나왔을 때
형제들이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이렇게 권고했지요.
“모든 형제들이여, 우리 모두 당신 양들을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 수난을 견디어 내신 착한 목자를 주의 깊게 바라봅시다.
주님의 양들은 고난과 박해, 수치와 굶주림, 연약함과 유혹 등
모든 점에서 주님을 따랐고, 주님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이렇게 업적을 이루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그저 이야기하고 설교만 하며 영광과 영예를 받기 원하니,
이것은 하느님 종들인 우리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껴안지 않고 주님을 껴안을 수 없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이 성인이고,
주어지기에 억지로라도 십자가 지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기꺼이도 억지로도 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마음의 유혹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저희들입니다. 신부님 말씀 마음에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