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마르코 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들었습니다.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우리는 복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가지고 오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복음이 정말 우리에게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느냐가 중요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라고 이야기 하면,
우리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길거리에 서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것을 할 자신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은 정작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되고,
그래서 복음 선포에 대한 말을 들으면
괜히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말로 하느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더 나아가 복음이 우리 자신에게 기쁜 소식으로 다가와야
그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나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라면,
복음을 전하는 나의 목소리는 힘이 없을 수 밖에 없고,
나의 표정이나 행동도 억지로 의무감에 하는 것이기에
기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파된 복음을
그 누구도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복음이 나에게 기쁜 소식인지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내 마음이 기쁨에 넘친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당연히 전하고 싶을 것입니다.
복음이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려면,
우선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시면서
위로해 주시는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각자도 고통 중에 있을 때
주님과 함께 할 수 있고,
주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 나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해 주시는 분이 우리 곁에 계시기에,
넘어지지 않고,
또한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에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는다면,
우리의 표졍이나 행동 또한
기쁨에 넘칠 것이고,
그 기쁨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그렇게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아
기쁨 넘치는 나날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