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맞는 말씀이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하셨을까?
실제로는 율법을 폐지하지 않으셨을까?
복음을 보면 율법들을 폐지하셨습니다.
실제로 율법의 많은 조항들을 어기셨습니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손을 씻고 먹으라는데 안 씻고 잡수시고,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데 병자를 고쳐주시고, 등등.
그런데 정확히 얘기하면 어떤 율법 조항들을 폐기하신 것이지
율법자체를 폐기하신 것이 아니고
율법주의를 폐기하신 것이지 율법을 폐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율법은 하느님의 법이고, 사랑의 법이었지만
점차 인간이 만들고 사랑에 어긋나는 율법조항들이 생겨났는데
이런 법들을 폐기하려 하신 것이고, 하느님의 법을 따르기보다
자기 법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사람도 따르게 하려는 것,
이 율법주의를 주님께서는 없애려 하신 것입니다.
저도 그렇고 인간사를 보면 이 율법주의가 참으로 비일비재한데
오늘은 저의 율법주의적인 면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저께 성주 사드 반대집회 미사에 청원자들과 같이 다녀왔는데
느낀 것이 참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저께 저는 형제들의 자유로운 정신과 행동을 적나라하게 봤습니다.
수도원에 있을 때는 조심도 하고 자유를 스스로 제한도 했는데
어렵기만 했던 저와 밖에서 데이트하듯 가니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맘껏 먹을 것도 없었고, 있어도 욕망을 절제키 위해
뭐 하나 먹을 때마다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억제했는데
지금은 먹는 것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자유로운 것 같고, 그래서 든 생각이
‘참 자유롭구나! 헌데 절제의 정신이 언제 이 형제들의 몸에 밸까?’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저는 조고각하照顧脚下를 강조하는데 자기의 발밑을 잘 살펴
신발조차도 함부로 벗지 말고 댓돌에 가지런히 벗어놓으라는 것이지요.
수도자란 무릇 자기의 있는 자리와 자기의 행동거지를 늘 살피는,
그런 흐트러지지 않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수도자란 모름지기 술을 먹어도
정신이 흐트러지거나 행동이 달라지면 안 된다는 건데
수도원 안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절제를 하다가도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 술을 먹으면 정신을 놓치고 행동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그만큼 수도정신이 몸에 배인 것이 아니니 그래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제가 양성을 담당할 때는 형제들에게 이것을 강조하였고,
강조를 넘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제하였습니다.
물론 말로는 강제가 아니라 가르침이고 권유이지만 제 마음이
수도자라면 모름지기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 그것이 바로 강제지요.
그런데 사랑도 그렇지만 정신도 강제로 주입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강제할 수 있지만 정신도 사랑도 다 영적인 것이기에
자유로이 그것도 사랑의 자유로 받아들이는 이에게만 받아들여지는 겁니다.
문제는 ‘언제 자유로운 영혼이 사랑의 영혼이 될 것인가?’입니다.
방종한 자유가 참 자유가 될 때 그래서
자유가 사랑이 될 때, 그때 자유로운 영혼은 사랑의 영혼이 되고,
자유가 사랑이 될 때, 그때 율법은 완성되겠지요?
그런데 이것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노력해야만 되는 것이니
사랑으로 깨달음을 나눠줄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것을 알면서도 어떤 때 기다려주지 못하고 강제하고픈
율법주의적인 저를 오늘도 저는 통렬히 비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