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여러분,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서 보물은 무엇이고, 질그릇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질그릇이란 질그릇처럼 보잘것없고, 깨지기 쉬운 우리 자신,
좁혀서 보면 우리의 의지나 육체를 일컫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얘기로 보아 보물이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힘인데
제 생각에 그것은 사랑이고 특히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이어서 이런 힘을 우리 안에 지니게 되면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고 합니다.
저는 바오로 사도의 이 말이 뻥이 아니고 정말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랑이 진정 힘이며
하느님의 사랑은 진정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하게 하는 힘입니다.
진정 하느님 사랑만 있으면
환난을 당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이 있어도 절망치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거나 맞아도 멸망치 않음은 물론이고,
살아 있어도 늘 죽음을 지니고 살고 죽음에 처해져도 삶을 삽니다.
사랑이란 본래 무화無化와 창조, 죽음과 부활의 이중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사랑만 있으면 이 사랑의 힘이 모든 것을 하게 하는데
문제는 이런 사랑의 힘을 어떻게 지니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사랑의 힘Power of Love을 지니는 것은
체력을 지니는 거나 이치 면에서는 같습니다.
우리의 몸이 힘을 지니려면 한 편으로는 잘 먹어야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힘들지만 운동이나 체력단련을 해야지요.
영양섭취를 않고 체력단련만 하면 골병이 들고
반대로 먹기만 하고 운동을 안 하면 비만이 될 뿐 아무 힘이 없지요.
사랑의 힘도 마찬가지여서 한 편으로는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시련을 통해서 사랑의 단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그 사랑을 어디서 받습니까?
어려서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사랑도 할 줄 안다고 하는데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는 것입니까?
인간적으로만 보면 그것이 맞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라고 하면 우리가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기도란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겁니다.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받아 사랑해야지만 지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받지 않고 사랑을 하려다가 사랑의 골병이 드는데
그것이 바로 미움이요 분노요 서운함이요 노여움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이건 하느님의 사랑이건 받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렸을 때 외동이로 부모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자란 사람은
받을 줄만 알고 할 줄 모르는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지요.
그렇습니다. 간혹 이기적이고 사랑 비만증에 걸리는 분이 있는데 그런 분은
기도를 많이 하여 하느님 사랑을 많이 받지만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로 우리 안에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사랑을 실천치 않으면
복부비만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쌓일 뿐
나의 사랑이 되지 못하고 나의 사랑의 힘으로 전환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복부비만만 걱정치 말고 사랑비만을 더 걱정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