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을 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며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낼까?
미뤄 생각하면 사제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닮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한국교회가 1995년부터 사제성화의 날을 지내기로 한 것은
새 사제가 첫 미사를 드릴 때 많이 부르는 사제 축가에서
사제의 맘은 예수 맘 인간의 고통과 번민을 자기 몸에 진다고 노래하지만
저를 비롯해 많은 사제들이 이런 주님의 마음과 멀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저를 보면 그것이 역력합니다.
세상에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참으로 많은데 그것을 같이 아파하기보다
그저 내가 그들처럼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은 거로 행복해하고
기껏 가지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고 해주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어떤 때 보면 얼마나 제가 저 중심적인지
모두가 내 마음에 들기를 바라지만 마음이 넓지 못하여
다시 말해서 마음이 옹졸하여 아무도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우리말에 <마음에 들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면 내 마음 안에 들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제 마음 안에 들이지 않고 내 치는 것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넓은 마음이면 모두가 마음에 들 텐데
마음이 너무도 옹졸하여 웬만해서는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저는 익산에 있는데 어제는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서울을 다녀오며 제가 싫어하는 기차를 어쩔 수 없이 탔습니다.
버스는 조용한데 기차는 역마다 안내방송을 크게 하고
친절하게 안내한다는 뜻에서 이것저것 안내방송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어제는 안내방송 소리가 얼마나 큰지 무척 짜증이 났는데
더 짜증이 난 것은 앞뒤로 앉은 청년들의 스테레오 기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소리에 민감하긴 하지만 제가 짜증이 난 진짜 이유는
귀가 소리에 민감해서라기보다는 왜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기침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생각지 않을까 못마땅해 하는
그 깐깐하기가 이를 데 없는 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어떠십니까?
당신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시며
고생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당신께 오라 하십니다.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만 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 오라고 하시고 무엇보다
고생과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라고 하시는 이유가 고생을 면해주고
짐을 벗겨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을 주겠다.>를 옛날번역은 <편히 쉬게 하겠다.>고 했는데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로 가면 마음 편히 쉬게 된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누가 오든 마음 편하게 해주고,
겸손한 사람은 남이 자기 마음에 들기를 요구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필요를 헤아리고 배려합니다.
폭력적인 깡패 영화를 보면 깡패두목은
별거 아닌데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패버립니다.
물론 우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폭력을 쓰지는 않지만
내 마음에 들기를 남에게 바라고 더 나아가 요구한다면
물리적인 폭력만 없지 마음의 폭력,
곧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워하는 마음의 폭력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비롯한 사제들이 양들이 자기 마음에 들기를 바라기 보다는
양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어루만져주는 겸손한 사제들이 되도록
양들인 여러분이 목자인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청합니다.
예수맘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