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이 제게는 일반적으로 들리지 않고
제게 특별히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1주일 후면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시작하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이 말씀은 저와 행진단에게 행진의 지침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서로 엇갈리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다른 지침을 주시는 것처럼 들리기고 합니다.
왜냐면 오늘 말씀 중에서 사람들한테 가라고 하시며 피하라고 하시고,
조심하라고 하시며 동시에 걱정하지 말라고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말씀들이 모순이 아니라면 이런 말씀이 되는 겁니까?
사람들한테 가되 위험은 피하고
조심은 하되 걱정이 지나치지는 않게 하라!
맞습니다. 사람들한테 가되 쓸데없는 위험은 피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뒤집어 얘기하면 쓸데없는 위험을 피하라는 거지
위험하니까 또는 위험을 피해 아예 가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견뎌야 할 박해가 있고
피해야 할 박해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생각나는 과거 얘기가 있습니다.
수도원을 나가 밖에 살 때 여호와의 증인 아가씨가 저를 개종시키려 했지요.
싫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아서 제가 하느님은 선하시고 사랑이신데
왜 세상에 악과 고통이 있는지 답을 달라고 하니 더 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원장을 할 때 역시 여호와의 증인인 나이든 자매가 와서
굳이 수도원 원장과 만나 신앙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감히 수도원에 찾아와 그것도 원장을 개종시키겠다는 용기도 대단하였지만
토론에 져도 끝까지 괴롭히는 그 막무가내가 대단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할 때 대상이 되는 사람이 싫다며 그래서 박해를 하면
그때는 어제 주님께서 발의 먼지를 털고 떠나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고집 부리지 말고 떠나야 하고 피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복음 선포를 사람들이 원하는데 가족의 박해가 있던지
경찰이나 권력자의 박해가 있다면 그때는 우리가 복음 선포를 위해
온갖 박해를 견뎌야한다고 오늘 주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음은 조심은 하되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조심을 하라는 말은 모기를 조심하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숲에 가면 모기가 많은데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실은 모기를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모기는 본래 무는 것이니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나의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요.
복음을 선포하러 가는 것도 마치 양이 이리떼 가운데 가는 것과 같으니
이리를 조심하는 것은 이리가 물어뜯을 기회를 주지 말라는 것이지요.
쓸데없이 책잡힐 행동이나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날 독재시대에는 우리나라도 그랬고 지금도 제가 북한이나 중국에 가면
제가 어떻게 하나 공안(경찰)이 살피고 약점을 잡으려고 하는데
복음 선포 외에 술에 취한다든지 우월의식이 드러나는 말을 한다든지 하면
복음은 선포하기도 전에 붙잡혀 가거나 물어뜯길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옳게 선포하다가 붙잡히게 되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할까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할 때는 해야 할 말과 행동을 하느님께서 다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할 때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집트로 가는 야곱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포르치운쿨라 행진이든 그 어떤 복음 선포의 행위든 그게 주님의 일이라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니 걱정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걱정을 한다면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고
아무리 여럿이 하더라도 그 일을 하느님 없이 하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