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네 눈으로 저 땅을 바라보게는 해 주지만,
네가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제 가나안을 바로 앞두고 있습니다.
가나안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곳까지 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볼 수는 있어도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시는데 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겁니까?
오늘 신명기 마지막 부분을 보면 모세는 하느님과 마주보며
친구처럼 사귀던 유일한 예언자인데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잘못을 저질러 그 벌 때문에 못 들어가는 겁니까?
민수기 20장 12절에는 비슷한 뜻으로 그 이유를 얘기합니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공동체에게 주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대단한 모세까지도 하느님을 믿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그래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모세의 어떤 행위가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행위였나요?
무엇이 하느님 불신한 표시인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미루어 짐작을 한다면
모세는 그저 말로 명령을 하여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지팡이로 바위를 쳐 물이 나오게 하였고,
하느님께서 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물을 주는 듯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 지금까지 자기 권위의 상징이요.
기적의 도구였던 지팡이에 의지하여 물이 나오게 하고
그럼으로써 마치 자기가 물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고 처신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을 믿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그렇게 하느님을 눈으로 마주 보던 모세조차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민수기의 얘기라면 오늘 신명기에서는 그 이유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모세는 광야의 사람이요, 광야의 지도자입니다.
구약의 전승은 두 가지입니다.
광야의 전승과 왕조의 전승이고,
순례자와 나그네의 전승과 정주의 전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그네 생활과 정착 생활을 반복하는데
정착생활을 하다가 우상 숭배를 하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민족의 침공을 받아 유배생활을 하게 하고,
백성들이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면 다시
가나안에 돌아오게 하는 역사의 반복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신앙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안주하거나 이 세상 것을 애착하여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파스카를 늘 기념토록 하였으며,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은 건너가야 하는 곳임을 늘 기념토록 하였으며
모세도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다스린 다윗과 달리
이런 나그네인 이스라엘을 영도하는 지도자로 두고자 하였을 겁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영원히 이방인이고 나그네이고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영원히 우리의 목적을 이룰 수 없으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오늘 신명기는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