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미얀마와 태국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에 우리 형제가 선교사로 나가 있기 때문이고,
이제 한 형제가 나간 정도가 아니라
두 선교단을 우리 한국관구가 맡을 것인지 검토를 하기 위해서 갔습니다.
여러 가지 얘기를 하던 중에 선교중인 형제가 얘기하기를
한국에 있는 형제들이 상대적으로 “Old”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선교지에서 영어를 주로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쓴 것이지만
나중의 그 말의 뜻을 보니까 나이든 사람의 정신을 얘기하는 거였습니다.
말하자면 늙은이의 정신이랄까요?
그 형제는 분명 ‘Spirit이 늙었다.’고 덧붙였는데
늙은이의 정신 또는 늙은 정신이란 뭔 뜻일까요?
생각이 고리타분하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는 정신이란 뜻일까요?
제 생각에 두 가지를 다 내포하는 뜻일 겁니다.
먼저 고리타분한 생각이란 신사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양성/남녀의 평등을 얘기하는 시대에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리타분하고
이런 고리타분한 생각은 늙은이의 정신이라고 할 만하지요.
그리고 늙은이의 공통점이 진보적이지 않고 보수적이라는 면에서
새로운 것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면
그것은 늙은이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볼 때 이 두 가지가 다 있습니다.
되게 진보적인 것처럼 젠체하지만 신사조를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시늉을 할 뿐이지 새것이 거북할 때가 많고, 적어도 저는
‘Early adopter’,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얘기한 것은 이런 새로운 것을 빨리 또는 일찍
받아들이는 것보다도 새롭게 살려는 정신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살려는 정신이 없는 것은 안주하기 때문이라는 거였습니다.
길들여지고 익숙한 것에 안주하는 것,
안정을 깨는 것을 극히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늙은이의 정신이며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이 늙은이의 정신이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늙은이는 종종 그렇습니다.
양로원에서 보면 자기 앉던 자리에 늘 앉아야지,
다른 자리에 앉으면 불안하거나 불안정하고
그래서 그 자리에 집착하고 누가 그 자리에 앉으면 싫어하거나
심지어 다른 데 가서 앉으라고 하다가 결국 다투기까지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집을 소유하지 말고
어느 곳, Locus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부동산을 소유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이처럼 어느 한 곳을
내가 있을 곳이라고 집착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지 못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익숙하고 길들여진 것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Early adopter가 새로운 물건, 예를 들어 새 스마트폰이 나오면
그것을 누구보다 일찍 사는 그런 것이라면 좋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정신이란
새로운 물건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잘 받아들이고 시작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것은 제가 이해하기에 쇄신과 회개입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았으면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도 늘 다 시작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그런 정신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생애 말년에 그 유명한 말을 형제들에게 남겼습니다.
“형제들이여 지금까지 진전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주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합시다.”
이 말씀이 프란치스코가 자신은 빼놓고 다른 형제들이
아직 진전을 못 이뤘으니 시작하자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 자신을 포함하여 아무리 진전을 이뤘어도
이 정도면 됐다고 안주하지 않는 정신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나아가면 거기까지 간 것이요,
그 나름으로 완성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란치스코는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은 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자전거와 같습니다.
계속 가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시작치 않는 안정은 안주이고,
안주는 서서히 죽는 것입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