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정말로 생각하는 대로 다 될 리가 없겠지만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으니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믿는 대로 될 것이라는 말이 또한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늘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수호천사를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그런데 제가 지금 묻는 것은 수호천사란 존재가
객관적으로 있다고 믿으시냐고 묻는 것이 아니고,
나의 수호천사가 있다고 믿으시냐고 묻는 겁니다.
왜냐면 오늘 주님께서 “그들의 천사들”이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그런데 나의 수호천사가 있다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무슨 소용이냐,
믿건 안 믿건 수호천사가 있다면 나를 수호해줄 것이고,
없다면 믿어도 다 헛것이라고 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수호천사가 우리를 돕는 것은 우리가 하도록 돕는 것이고,
도움을 받아들일 때 수호천사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도 않고, 하지도 않는데 도울 수 없고,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도움을 원치 않으면 도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의 수호천사가 있고 그가 나를 돕고 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그 수호천사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살다보면 우리가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밖의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꽤 도움이 되는데
안의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착각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밖의 사람들에게는 종종 그들의 수호천사가 되는데
안의 사람들에게는 수호천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느낌이 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까?
실제로 내가 안의 사람보다 밖의 사람을 더 잘 돕기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안의 사람보다 밖의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됩니다.
왜냐면 안의 사람은 무엇을 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인데 비해
밖의 사람에게는 안 해도 되는 것을 그야말로 사랑으로 하는 것이고,
또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청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식을 돕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다 부모 노릇하는 것이지!
예를 들어 가족 중의 누가 아플 때 기도해달라는 부탁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한테 하지 가족한테 하지는 않지요.
그리고 엄마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감사치 않지만
남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면 기대치 않은 사랑이기에 엄청 감사케 되지요.
게다가 가족은 싫은 소리도 해야 합니다.
잘못하고 잘못된 길을 갈 때 밖의 사람은 상관치 않아도 되지만
안의 사람은 상관치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상관하면 싫어하고
심지어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간섭이라고 여기며 거부합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옳은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수호천사인데 거부하면 그만둬야 할까요?
그것은 사랑이 아니며 사랑이 실패하는 것이니 그리하면 안 되겠지요.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우리는 내 사랑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종종 내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사랑이 실패했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내가 사랑을 포기할 때 실패하는 것이지
상대가 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 의해 좌절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