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제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고,
사제와 같이 지도자들인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자, 이제 사제들아, 이것이 너희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그런데 이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말라키서는 우선 이렇게 나무라십니다.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
이것을 신약의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꾸어 얘기하면
길이신 주님을 떠나 우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길이신 주님을 따라 하느님께 가야하는 존재들이고
그럼으로써 우리처럼 다른 이들도 하느님께 인도해야 하는 존재들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따르기보다 내 멋대로 가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보다 나의 법을 만들고는 그것을 고집합니다.
주님을 떠났기에 사랑의 계명을 따르지 않고 시비만 따지고
옳고 그름만 따지기에 사랑보다 법에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종 대화하며 사랑으로 풀어야 할 것을
서로 자기가 옳다고 고집함으로써 법으로 해결하게 되고
같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법정으로 가고는 맙니다.
저나 저와 같은 수도자들이 제일 잘 빠지는 게 시비지심입니다.
매사를 옳고 그름의 눈으로 보는 것이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와 나는 다를 뿐이고, 다르지만 사랑을 해야 할 것을
다르다 대신 틀렸다고 하고, 사랑 대신 싸움을 하곤 합니다.
이것이 너의 법으로 많은 이를 걸려 넘어지게 했다고 나무라시는 건데
가끔 저희 수도회나 재속 프란치스코회 평의회가 시비에 휘말림으로써
회원들까지 시비에 휘말려 잘못 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는 어느 봉사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얘기합니다.
형제들이 너무나 잘못 살면서도 이를 고치라는 말에 순종치도 않아
관구장이 애를 먹고 있었고 그래서 관구장직에서 물러나려고 할 때
프란치스코는 그 관구장에게 형제들이 훌륭한 형제이기를 기대치 말고,
다시 말해서 자기 마음에 들기를 바라지 말고, 주님께 수종하여 그가
자기 앞에서 수천 번 죄를 짓더라도 끝가지 주님께 인도하라고 합니다.
이때 관구장은 형제들의 죄와 잘못에 모든 것이 꽂혀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하느님은 제켜놓고 형제들과 씨름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
자신도 주님께 나아가고 형제들도 주님께로 인도하라고 하는 겁니다.
또 다른 면에서 사제나 지도자들이 잘못 한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자리를 차지하고 심지어 하느님의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는 겁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
다시 말해서 모세와 하느님의 자리에 앉아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데
문제는 남에게는 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더 문제는 이런 자리에 앉음으로써 남위에 군림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아무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 하시고
아무도 스승이라고 불리지 말라 하시며
그저 우리의 한 분 아버지 앞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라고 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인준 받지 않은 회칙 22장에서 오늘 복음을 그대로 인용하며
그 유명한 Fraternitas/형제애와 형제성에 대해서 얘기하지요.
아버지는 하느님 한 분뿐이시고 스승도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기에
우리는 아버지나 스승 소리를 들으려 하지 말 것이며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형제가 될 것이라는 얘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제켜놓고 서로 마주보며 네가 맞니 내가 맞니 시비나 가리고,
네가 위이니 내가 위이니 위아래를 가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같이 하느님 앞에 있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배자가 아니라 인도자이어야 함을 생각케 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