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 지체가 됩니다.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심오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지체론입니다.
제가 적극 동감하고 아주 좋아하며 즐겨 인용하는 교리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오늘 말씀은 지체마다 은사가 다르다는 말씀인데
저라는 그리스도의 지체는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그래서 어떻게 나의 은사가 뭔지 한 번도 생각지 않았을까 생각게 되었고
이참에 한 번 나는 어떤 은사의 존재인지,
어떤 은사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은사란 무엇입니까?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까?
복음에서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줬다고 했을 때의
그런 의미의 능력이라면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은사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의 은사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이라는 인식과 자세가 없으면
그것은 은사가 아니고 그저 개인이 애써 얻어 지닌 능력에 불과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몸의 완성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면
이 또한 은사가 아니라 능력일 뿐일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얘기하면 소명을 위한 은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주신 은사는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위해 주신 것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위해 쓰일 때 은사인 것입니다.
저는 능력으로 치면 예술적인 재능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련기 이후 저는 저의 능력을 천부적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는 제가 능력 면에서 뛰어나다는 뜻, 과시하는 뜻에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느님께서 주셨다는 뜻에서입니다.
천부적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 저는 그 능력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자꾸 저를 자랑하고 우월감을 가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부적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하느님과 공동체를 위해서 쓰기 시작하였는데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고 완성되는 것을 위해 쓴 것입니다.
그런데 소명이라는 면에서는 제가 자주 걸려 넘어졌습니다.
소명을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이 아니라 나의 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거의 대부분 원장이나 관구장으로 살았고
어디를 가든 늘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곤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책임자의 은사를 주셨고 개척자의 은사를 주셨는데
시작할 때는 어떤 일과 책임을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으로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하다보면 그 일과 책임을 나의 것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럴 경우 늘 문제가 있었습니다.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 몸에 붙어 있는 저라는 지체도
힘과 생기를 잃고 배배 말라 가고 쇠퇴해지곤 하였습니다.
오늘 은사란 소명을 위해 주신 은사임을 다시 성찰하였고,
그렇게 살지 못했음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였습니다.
아! 그런데 문제는 얼마나 이 점에 깨어 있느냐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