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오늘 복음은 주인이 여행길 떠나며 맡긴 달란트를 돌아와 셈하는 얘기인데
루카복음에 나오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나눠주는 돈의 크기가 다릅니다.
마태오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달란트이고 루카는 미나라는 작은 돈입니다.
그리고 루카는 똑같은 액수를 주는데 비해 마태오는 차등하여 줍니다.
오늘은 여기에 착안하여 묵상을 하고자 합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임금이 열 사람에게 각기 한 미나씩을 주고 떠나는데
마태오복음에서는 주인이 다섯, 둘, 한 달란트를 각기 다르게 주고 떠납니다.
그런데 능력에 따라 다르게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인은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니 하느님이 우리에게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달란트를 주셨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리고 앞의 능력은 뭘 말하는 것이고 뒤의 달란트는 뭘 말하는 것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저는 달란트를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 또는 재능이라고 이해해왔는데 그렇다면
능력에 따라 능력을 더나 덜 주셨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거라면 이제부터는 달리 이해를 해야 하겠지요.
우선 <능력에 따라>에서 능력이란 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달란트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모든 선을 의미하는 겁니다.
제 생각에 덕德이란 선善과 관련된 능력이고
선이란 선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도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선이고,
재능도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선이고,
머리도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선이지요.
선과 관련된 능력이 많은 사람, 곧 덕이 많은 후덕厚德한 사람은
선을 많이 벌어들여 쌓습니다. 다시 말해서 적선積善을 합니다.
그리고 그 선을 자기 혼자만 차지하지 않고 후하게 남과 나눕니다.
반면 선과 관련된 능력이 없는 사람, 곧 덕이 없는 박덕薄德한 사람은
선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반대로 악만 쌓고 악만 나눕니다.
왜냐면 덕이 없으면 선은 보지 못하고 악만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을 모진 분,
곧 악하거나 자비가 전혀 없는 분으로 봤기 때문에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도 선이 아니고 갚아야 할 빚으로 봤고
주인이 준 것도 자비로 준 것이 아니라 돈놀이로 준 거였습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을 고리대금업자요 악덕 기업가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를 보면 하느님이 얼마나 자비로운 분입니까?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일당을 말하는 거니
한 달란트를 받는 사람은 6,000일 그러니까 16년 하고도 5달 정도
일해야 버는 돈을 받은 것이니 어마어마한 돈을 받은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은 이렇게 풍성하게 주시고
그 돈을 가지고 많이 벌면 그것을 모조리 거두어 가시는 분이 아니라
칭찬을 하시며, 거기에 덧붙여서 되돌려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칭찬 받는 여인에 대해서 얘기하지요.
“그 손이 거둔 결실을 그에게 돌리고, 그가 한 일을 성문에서 칭송하여라.”
우리도 칭찬 받는 종과 여인이 되고 싶지 않으세요?
진정 칭찬 받고 싶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