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레위기 말씀은 당신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말로 시작하여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나, 주 너의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19,2)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19,18)
그리고 복음의 주님은 이웃이 당신인 듯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레위기에서 하느님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우선 이웃에게
불의한 짓을 하지 않는 것이고 공정하고 의롭게 대하는 것입니다.
-도둑질, 사기, 거짓 맹세를 않는 것
-이웃을 억압하거나 이웃의 것을 빼앗거나 품삯을 안 주지 않는 것
-귀머거리에게 악담하거나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않는 것
-권세가나 가난한 자 어느 편을 들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
-이웃을 중상하거나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지 않는 것
-형제를 마음속으로 미워하지 않고 형제의 잘못을 꾸짖는 것
그리고 결론처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는데 오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레위기가 하지 말 것과 해야 할 것을 말하면서
“나는 주님이다.”를 후렴구처럼 엮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이런 식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내가 너희의 주님인데
그런 내가 한 말이니 반드시 그리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남을 사기 치거나 남의 것 빼앗거나 불의하게 판결하는 것,
이런 것들은 주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니 아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이런 말씀은 아무리 주님이 말씀하셔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없는 사랑을 어떻게 할 거며
게다가 그가 원수라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지난 재의 수요일 강론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의지의 사랑만으로는 억지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이고,
안 되는 사랑을 의지적으로 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부작용으로 인해 미움과 분노만 증폭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이시니 사랑하려고 노력은 하되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 하는데 그것을 풀이하면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나를 진정 사랑하는 것이 먼저고,
그렇게 나를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되면 그때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앞서 없는 사랑으로 어떻게 사랑하느냐고 했는데
내가 진정 나를 사랑할 때 내 안에 사랑이 자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없지만
자기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드믑니다.
이기주의적으로는 자기를 사랑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기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점과 허물이 많고 더욱이 죄 많은 자기를,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지만
거룩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 사랑의 수준이 되어야 가능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은총의 사랑체험이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가 자주 얘기하듯 Propter amorem Dei/하느님 사랑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 덕분에 또는 하느님 사랑에 힘입어 사랑한다는 뜻도 있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도 사랑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 친히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라고 하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사랑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의 은총을 청하면서 다시 말해 기도하면서 다시 사랑을 해봅시다.
"그런데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없지만
자기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드믑니다."
저는 제가 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군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사랑하는 길로 꾸준히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