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정의가 바로 ‘기도는 대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는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니
기도의 한 부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한 부분은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을 아뢰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 미사에서 1독서는 비처럼 내리는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해,
복음은 하느님께 어떻게 말씀을 아뢰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합니다.
먼저 <하느님 말씀을 듣는 기도>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그리고 대화의 훈련이 되어 있거나 예의가 있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일반적인 대화에 있어서도
자기말만 짓떠들어대지 않고 들으려고 하고 그리고 경청을 합니다.
들으려는 자세를 가졌을 뿐 아니라 들을 줄 아는 능력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이러하다면 하느님과의 대화에서는 더더욱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들을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만
들을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말은 도무지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을 생각하면 이해가 갑니다.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할 말은 너무 많고
반대로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랄까 여백은 없습니다.
화난 사람, 억울한 사람, 이기고픈 사람, 자랑하고픈 사람, 가르치고픈 사람,
이런 사람들이 바로 듣는 것에 있어서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지요.
이런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이 비처럼 내려와도 하나도 스며들지 않고
다 흘러내려가고 말기에 하느님의 말씀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말씀은 뜻을 반드시 완수하고야 만다는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비,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그렇습니다. 한 번 온 비와 눈은 하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도 당신 말씀을 거두어들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사랑을 포기하지만
하느님은 당신 사랑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야 이루어지겠지요?
다음은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의 말을 아뢰는 기도>에 대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기도 해야지만
우리의 말을 잘 아뢰기도 해야 되는데
그런데 이 말을 청원기도 차원에서만 이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마치 중요한 청탁을 해야 하는데 말을 잘 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입니다.
아마 우리가 청탁은 잘 할 것이고 그래서 청원기도는 잘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말씀이 청탁밖에 없어서는 안 되겠지요.
자식이 부모에게 노상 달라는 말밖에 없으면 되겠습니까?
성숙한 자녀라면 이제 감사의 표현도 하고
동등한 대화의 파트너로서 격조 있는 사랑의 표현도 할 수 있어야겠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빈말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에도 없는 말이 빈 말이 아닙니까?
청할 것 외에는 감사할 것도, 찬미할 것도, 사랑 고백할 것도 없는데
뭔가 말을 해야 하니 하느님께 빈 말을 하는 것입니다.
빈 감사의 말,
빈 찬미의 말,
빈 사랑의 고백을 씨부렁거리면 그것이 기도가 되겠습니까?
씨부렁거린다는 표현이 좀 거칠기는 한데 빈말은 원래 씨부렁거리는 거지요.
씨부렁거리지 않고 기도를 좀 하는 우리가 되기로 합시다. 오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