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대로 갈릴래아로 온 제자들은 하릴없이 그물을 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네.”하고 말하는데
이 말이 제게는 매우 허탈하게 들리고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네.’로 들리면서
‘그래 고작 고기나 잡으러 갈릴래아로 가라고 주님이 하신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주님은 왜 늘 이런 식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아시시로 돌아가라고 하시고,
거기로 가면 프란치스코가 뭘 해야 할지 당신의 뜻과 당신의 계획을
알려주겠다고 하셨는데 알려주시지 않아 한 동안 방황하게 하셨지요.
아브라함에게도 그 늙은 나이에 살던 곳을 떠나라고 하시고,
떠나면 잘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시지만
그게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른 채 한 동안 기다리게 하셨지요.
오늘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 하셨지만 왜 가야 하는지,
가서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가라고 하시니
제자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옛날 하던 일이나 하러 갑니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에게 아시시와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는 어떤 곳입니까?
왜 그리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까?
우선 살던 곳과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떠났습니까?
자기의 성취와 성공을 꿈꾸고 떠난 거지요.
그러니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감은 성공의 차원에서 보면 실패요,
욕망이나 계획의 차원에서 보면 포기와 좌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너무도 당연한 것이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따르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의 뜻과 계획, 그것도 욕망에서 비롯된 자기의 뜻과 계획은
좌절이 되고 실패로 돌아가야만 하겠지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거의 습관처럼 된 것이 있는데
제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알아챔입니다.
일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예전에는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됐나 저를 자책하고 반성하고,
또는 다른 누가 잘못하거나 방해해서 이렇게 됐다고 탓을 돌렸지만
이제는 내 뜻의 실패가 하느님의 뜻이 이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은 나의 뜻을 꺾는 것뿐입니까?
우리 인간은 누가 자기의 뜻을 꺾지 않으면 그 못된 고집을 꺾겠다고 하며
어떻게 해서라도 뜻을 꺾으려고 하는데 주님께서도 그런 것입니까?
물론 그런 것이 아니지요.
욕망과 나쁜 계획을 좌절시키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지만
더 중요한 하느님의 뜻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번 부활 판공성사 때도 수없이 얘기했지만
고백성사란 과거 죄를 고백하고 용서 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뜻은 옛 죄에 머물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중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것은 가던 차가 중지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된 곳으로 가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야 할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고,
그러므로 중지만으로 충분치 않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갈릴래아로 돌아감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의 의미임을 성찰하는 오늘이고
우리도 무엇은 중지하고
무엇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성찰하는 오늘입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