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하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오늘 강론 주제로 저는 완전한 공동체로 잡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는 유다 이스카리옷의 빈자리를 마티아 사도로 채우는데
그 방법이 기도와 함께 <제비뽑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완전한 공동체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완전한 공동체는 빈자리가 없이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공동체가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만일 완전한 공동체가 이런 의미라면
완전한 공동체는 애초부터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12 사도를 뽑으실 때부터 사도단은 불완전하였습니다.
사도들 하나하나가 불완전하였을 뿐 아니라
구성원 관계 면에서도 불완전 요소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세리 마태오와 혁명 당원 시몬이 한 구성원이었다는 것은
갈등과 분열의 위험이 휘발성 인화 물질이 같이 있는 것처럼 농후하였지요.
이것을 주님께서 모르셨을 리 없는데 주님께서는
불완전한 사람들을 가지고 불완전하게 사도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공동체를 만드셨을 때 서로
왜 저 인간을 뽑으셨을까 속으로 궁시렁대던 제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 어차피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래서 완전한 공동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생각하신 완전한 공동체는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12지파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누구도 배제하지 말아야 하고,
누구도 참여를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공동체가 누구는 안 된다고 배제하거나
유다 이스카리옷처럼 빠졌을 때 없어도 된다고,
그러니 다시 채울 필요가 없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한 개인을 전체 구성원에서 빼서도 안 되지만
개인도 꽁무니를 빼서는 안 됩니다.
싫다고 꽁무니를 빼거나
불만 때문에 꽁무니 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안 되겠지만
부족하기에 못하겠다고 꽁무니를 빼는 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공동체란 또한 기도의 공동체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뽑으시도록 기도합니다.
두 사람을 추리는 것까지는 사도들이 하였지만
낙점은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기도로 제비를 뽑습니다.
그러니 우리 공동체도 누구를 선출하고 무엇을 할 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로 식별하고,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샤를르 드 후코처럼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쓰시든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하느님은 내 아버지이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