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축일을 지내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프란치스칸들에게도
큰 성인이요 그래서 축일도 크게 지내지만
일반 신자들에게도 가장 사랑받는 어쩌면 프란치스코 성인보다도
더 사랑 받는 성인이고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오늘 축제를 크게 지내는 성인입니다.
이런 성인을 교회는 설교자와 전구자로 특징짓고 있으며
그래서 오늘 축일의 본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안토니오를 뛰어난 설교자요 곤경 속의 전구자로 보내 주셨으니
저희가 그의 도움으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그런데 안토니오가 뛰어난 설교자라고 함은 어떤 뜻입니까?
누구나 짐작하듯 지식이 뛰어나 설교로
모르는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사실 모르는 것을 많이 잘 가르쳐주는 사람이라면
뛰어난 설교자라기보다 뛰어난 교수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니까 뛰어난 설교자란 머리에 지식을 넣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감동을 주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며
마음을 움직여 회개케 하는 사람이고,
회개를 하여 복음을 살게 하는 사람이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기로 우리를 감동케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얘기를 잘할 때입니까, 얘기 자체가 감동적일 때입니까?
얘기를 잘 하는 사람은 재미있게는 하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는 하여도 감동을 주지는 못하고
그 얘기가 진실 될 경우 감동을 주는 법이지요.
그리고 진실 된 얘기는 진실 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얘기지요.
진실 되지 않은 사람이 말을 잘 하고 얘기를 잘 할 때
우리는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한다고 즉시 비판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진실은 감동의 기본일 뿐 완성은 열정입니다.
진실은 믿게 하고 열정은 타오르고 움직이게 하지요.
설교자의 삶이 진실 될 뿐 아니라 자신을 불사를 정도로
열정이 있어야 사람들에게 그 열정이 느껴지고 전염되어
비로소 그 말에 의해 사람이 바뀌고 행동으로 옮기게 합니다.
미지근한 불로는 온돌이 뜨거워지지 않듯
열정으로 불타지 않으면 마음을 타오르게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려는 안토니오의 열정이
뛰어난 설교를 하게 한 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너무도 하느님을 사랑하여 순교로 자신을 불사르고 싶었고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작은 형제회로 옮겼습니다.
그는 그토록 사랑하는 하느님을 전해주고픈 이웃 사랑 때문에
복음을 그토록 열정적으로 선포하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
그가 이웃에게 베푼 제일 큰 사랑이었지만
같은 사랑에서 그는 병자와 가난한 이의 아픔과 어려움을
하느님께 간절히 전구하여 성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구자가 되었고
가장 많은 기적을 일으킨 성인이 되었으며 그래서
죽은 지 1년도 안 되어 성인품에 오를 정도로 가장 빨리 성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안토니오 축일을 지내는 우리가 설교는 안토니오처럼 못할 지라도
이웃을 위해 기도해주는 그 전구만은 우리도 따라 할 수 있지요.
그 사랑조차 못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내 배만 불리듯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 기도하시겠습니까?
안토니오 성인이시여~ 저희가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저도 복음을 따라 살게 전구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