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오늘 주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게 되거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지 말라는 말을
돈 벌 생각을 말라거나 벌더라도 열심히 벌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역사 안에 잘못된 신앙이 늘 있어왔는데
바오로 시대에도 종말신앙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하며
자신도 죽을 때까지 직업을 가지고 자기 먹을 것을 벌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제가 요즘 일을 조금 하고 있는 것을 알고계시지요.
맡고 있는 소임들 때문에 일당노동을 한 달에 10일 내지 보름정도 하는데
그 조금 일하는 것도 정말 하기 싫고 그저 편하게 놀고먹고만 싶습니다.
그러므로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지 말라는 말씀은 다른 뜻입니다.
성실과 책임으로 벌되 욕심으로는 돈을 벌지 말라는 것이며,
욕심으로 바뀌기 전에 세상 욕망을 하느님 갈망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냥 놔두면 쉽게 욕구는 욕망으로, 욕망은 욕심으로 바뀌기 마련이지요.
이에 비해 하느님께 대한 영적인 갈망은 저절로 또는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힘써야 하고 더 강하게 표현하면 애를 써야 합니다. 왜인 줄 아십니까?
배가 고프면 즉시 신호가 오고 고플수록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며
며칠만 굶어도 힘이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먹을 것만 거의 본능적으로 찾게 되지만 영적 갈망은 다릅니다.
하느님이 안 계시고 하느님의 사랑이 없어도
내 주머니만 두둑하면 당장의 문제는 없지요.
예를 들어 밥 한 끼 안 먹으면 기운이 없어 일을 할 수가 없지만
미사와 영성체는 한 번 안 한다고 살아가는데 당장 문제될 것 없지요.
그러니까 영적인 갈망은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영원의 문제이고
그래서 주님께서도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그러므로 바라는 것/망望의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사라 없어질 이 세상 것을 바라는 욕망慾望에서
영원한 것을 바라는 갈망渴望으로 말입니다.
이는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과 주님 사이에서 오간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물 한 모금 달라고 영적인 수작을 거시며 한 말씀하시죠.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러자 여인은 그 물을 달라고 청하고 주님은 남편 얘기를 꺼내십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남자도 만족할 수 없지 않느냐,
이 점을 꼬집으시는 거지요.
인간은 욕구만족의 존재이고, 이 만족을 줄 것들을 욕망하고 욕심냅니다.
그러나 욕망은 언제나 그 끝이 허무이고,
욕심은 언제나 그 끝이 파멸이고 고통입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이 허무와 고통을 통과한 사람만이 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영적갈증이 생기는 법이니 이 영적인 때를 기다리거나
이 영적인 때를 앞당기기 위해 야곱처럼 하느님과 힘든 씨름을 해야겠지요?!
이것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