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비유를 요즘 일터에 그대로 적용하면
아무리 주님의 말씀이고 가르침일지라도 부당하고
그래서 당장 반박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가 요즘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고 있는데
오늘 주님 말씀처럼 5시에 나와 7시부터 일을 하는 사람과
오후 두세 시에 나온 사람이 똑같이 일당을 받는다면 난리가 나고,
특히 이번 여름처럼 고생이 막심할 때는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사실 나는 내가 받기로 한 것만 받으면 다른 사람이 많이 받건
적게 받건 그만이어야 하는데 절대로 그만일 수 없습니다.
나만 고생한 것이 억울하고,
나의 성실함이 바보스러움이 되는 것은 더 억울하며,
반대로 게으른 사람이 똑같이 받으면 화가 나기까지 하기 때문이지요.
우리 인간은 아무리 하느님께서 인간 모두를 사랑하시고 똑같이 사랑하셔도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분노하게 되어있습니다.
나도 사랑하고 그도 사랑하지만 그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공정하지 않음에 분노하고 사랑이 더 큰 것에 대해서는 시기질투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비유에서 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요?”
그런데 오늘 비유를 영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면
하느님께서 공정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거나
공정의 문제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포도밭은 말할 것도 없이 주님의 포도밭이고 이스라엘이었지요.
그러니 포도밭에서 일하는 것도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중노동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가꾸는 일이지요.
저나 저처럼 수도원에 일찍 들어온 형제들이 수도생활 초기에
공통적으로 갖는 감정이 일찍 들어온 것에 대한 억울함입니다.
친구나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은 젊음을 만끽하며 연애도 하고
맘껏 즐기는데 나는 수도원에 처박혀 온갖 고뇌와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젊음을 허비하고 희생한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오더라도 밖에서 남들 하는 것 다 하고
늦게 들어올 걸 괜히 일찍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참으로 미숙한 생각이었고,
행복하지 않았을 때의 어수룩한 생각이었지요.
다른 사람들 놀 때 내가 인생에 대한 고뇌를 하고
즐거움을 희생한 것 사실이지만 그것은 괜한 고생이 아니라
행복수업을 남들보다 일찍 받은 것이었지요.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제가 수도원에서 행복한 것이 미안하였습니다.
제 또래의 사람들이 왜 사는지도 모르며 살고,
먹고사느라 그리고 가족 부양하느라 참으로 힘들게 사는 것을 보면
행복한 저의 삶이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것이고 게다가 친구들은
건강이 안 좋은데 저만 건강까지 좋으니 그 미안함이 더 크지요.
주님 포도밭에 일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일찍 신자가 되고 교회 봉사하는 것이 억울한 사람 있습니까?
‘남들처럼 젊었을 때 죄의식 없이 돈 많이 벌고 온갖 쾌락 다 누리며
하고 싶은 것 다 하다가 죽을 때 세례를 받을 걸!’ 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신앙생활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거지요.
그러니 주님께서 복음에서 가르치신 것이 행복의 비결인데 하루라도 일찍
깨쳤으면 더 일찍부터 행복했을 텐데 늦게야 복음의 맛을 안 것이 아쉬어야
신앙생활을 잘 그리고 복되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오늘 깨달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