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평화를 빕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느님의 지혜는
돈이나 명예와 세상의 권력이 주는
세상의 기쁨을 쫒고 찾아 그것에 만족
하여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보다 앞서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에
대한 믿음 안에서 없어지지 않는 기쁨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쪽에서 보기에는 하느님의
지혜가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느님쪽에
서 보면 세상이 어리석어 보이기 마련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한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비록 하느님의 지혜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느님의 지혜를 쫒고
세상의 어리석음의 멀리 한다고 할지라
도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고 쫒고 있는
하느님의 지혜로 인해서 세상의 어리석
은 사람들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소유욕입
니다.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욕심
인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하느님의
지혜라 할지라도 그것을 내것으로 삼고
나의 만족으로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하
나의 수단으로 삼고자 한다면 우리가 찾
고 있는 하느님의 지혜는 즉시 세상의
어리석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어떤 형제님께서는
복음적인 삶에 대해서 이상과 삶에 대해
서 말씀은 많이 하시고 가르치시기도 하
셨지만 본인 스스로 많이 알고 있고 가르
치는 입장이고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살
고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그것이 남을 판
단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실수를 하고 잘못한 이들을 이해하고 마
음을 헤아려주기 보다는 오히려 비판하고
판단하고 질책을 많이 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열처녀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열처녀의
비유의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안에서 살
아가는 깨어있는 이들과 세상이 주는 기
쁨 속에서 만킥하면서 회개하기를 늦추
면서 살아가는 이들을 등불을 준비한 처
녀들과 그렇지 못한 처녀들을 비유로 말
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위의 관점에서 새
롭게 바라본다면 열처녀가 받은 등불은
하느님의 지혜이며 깨어있지 못한 처녀
들은 하느님의 지혜를 자신의 만족으로
소유한 이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
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체 마치 자신이
잘살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뜻에 맞게
합당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그러면서 정
작 필요한 사랑은 잊은체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깨어있지 못한 처녀들의 모습인 것
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고
기도생활 열심이 하고있고, 본당활동 활
발이 하고 있으며, 재속회 열심이 참여하
고 등등.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번 되돌아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지혜를 내것으로 소유
한체 살아가는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일
수 있으며 또한 깨어있지 못해 등불을 준
비하지 못한 처녀들이 될 수가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 하루도 한번쯤은 우리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는 그러한 하루가 되었으면 합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