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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일찍 일어나 제 작은 방 벽에 등을 기대고

오늘 축일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며 오늘은 한국 순교자 대축일이기에

성인들에 비추어 저의 삶을 성찰하고 반성을 하였습니다.

 

저의 반성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순교성인들은 목숨을 바치셨는데

나는 바칠 생각은 없고 그저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의 불순교적인 삶 또는 반순교적인 삶이었습니다.

 

먼저 바칠 생각은 없이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에 대해서 보면

우선 이 성찰이 제가 사람들로부터 받으려고만 하고

주려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물론 제가 신자들로부터 사랑이건 선물이건 드리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많으며 뒤집어 얘기하면 받는 것은 많은데

드리는 것이 훨씬 적은데 이것을 부정하는 말은 아니지요.

 

바칠 생각은 없고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께 대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얼마간 제 사랑을 드리려고 하고,

가진 것을, 아니 받은 것을 얼마간 나누려고 하지만

하느님께는 바치려는 마음이 애초에 너무 없고

바치는 정성과 예물이 없거나 있어도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이가 엄마에게 그러하듯 우리도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없고 받기만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와 하느님의 관계이고 이 면에서는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사랑을 바치려는 마음이 필요하고

바칠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면 희생이라도 바쳐야 할 텐데

바치려는 마음이 밑바닥에서부터 없다는 성찰과 반성인 겁니다.

 

시골 할머니가 신부님께 드릴 것이 없으니

감자라도 쪄서 드리는 것과 같은 마음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일상의 불순교적인 삶 또는 반순교적인 삶입니다.

오늘 아침 성찰을 하다 보니 성인들은 목숨을 바쳤는데

저는 저의 임종을 생각할 때 점점 나이 들수록

추한 죽음에 대한 염려 때문에 정말 추하지 않게 죽는 것이

일상의 바람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자다가 조용히 죽었으면, 또는

좀 더 고상하게 기도하다가 죽었으면, 그리고

그제 새벽에 혼자 미사드릴 때는 이렇게 미사 드리다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거였습니다.

 

순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의 삶을 주님께 바치고 이웃을 위해 바치려는 생각 없이

그저 안전하게, 편하게, 추하지 않게 죽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 나가서도 모두들 자기 잇속과 편함과 자존심을 챙길 때,

또 그렇지 않은 저를 바보 취급을 할 때 제 속으로

그래, 내가 바보가 되어주는 거야!’라고 사랑으로 잘도 의미부여하지만

하느님 때문에라고 일상의 의미부여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순교자 축일인 오늘만이라도

순교의 의식,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바보짓이라면 바보짓을 하고, 사랑이라면 사랑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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