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어제 복음은 청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실 거라고 얘기하고 있고 오늘 독서,
갈라티아서는 믿는 이에게 약속된 성령을 주실 거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오늘 복음 부분과 연관 지어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탄은 인간이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주 하느님께 향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한 주위를 배회하면서 어떤 보상이나 도움을 구실로 인간의 마음을
빼앗아 가고, 주님의 말씀과 계명들을 기억에서 질식시키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세상일과 걱정에 사로잡히게 하여 인간의 마음을 눈멀게 하고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상을 모두 종합하면 하느님께서 성령을 주실 거라고 우리가
믿고 청하지 않으면 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하느님께 향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 주위를 배회하던 사탄은 주님의 말씀과 계명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마음은 보상이나 도움을 구실로 빼앗아가거나 세상 걱정에 사로잡히게 하여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 차지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남자가 바람을 피웁니다.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여자가 나타나서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에게 싫증이 나거나 내 사랑에게서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어
눈길을 돌리니 거기에 새로운 여자가 있어 바람을 피우는 것입니다.
벽계수는 황진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바람을 피우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화담 서경덕은 황진이가 시험하러 찾아왔어도 바람피우지
않고 황진이를 진정 사랑함으로써 유혹녀/악녀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이 되게 했지요.
그러므로 악령이 노리고 그래서 악령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성령을 갈망치도, 성령으로 충만치도 않아
하느님과의 유착관계가 헐겁고 그래서 눈길을
하느님 아닌 다른 곳에 자꾸 돌리는 존재지요.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고,
빛으로 충만하면 어둠이 없듯이
하느님을 믿으면 악령이 힘을 쓰지 못하고,
하느님을 갈망하면 악령이 욕망을 들쑤시지 못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면 성령 충만하여 마음의 빈자리가 없겠지요.
물리적인 빈자리는 아무도 앉지 않은 빈자리이지만
사랑의 빈자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 빈자리지요.
신앙인인 우리는 악령을 위한 빈방은 없습니다.
오로지 성령을 위한 빈방만 있는 우리입니다.
성령을 위해 온갖 욕심과 집착을 비어내고,
미움과 시기질투를 비어내고,
온갖 편견과 선입견을 비어낸 빈방만 있습니다.
비움과 채움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