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는 오늘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밤을 지냅니다.
하느님의 산 호렙에 오르기 전 엘리야는 다른 산 갈멜 산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이세벨의 수많은 거짓 예언자과 대결을 하였습니다.
우리 흔히 하는 말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眞劍勝負를 한 것입니다.
누가 진짜 예언자인지, 누가 최고의 하느님인지 판가름하는 승부이지만
지는 쪽은 죽는 승부입니다.
그런데 목숨을 건 이 싸움에서 주님의 힘으로 승리한 엘리야였지만
이세벨의 죽이겠다는 위협에 엘리야는 이세벨이 무서워 도망을 칩니다.
이렇게 도망을 쳐 도달한 산이 하느님의 산, 호렙이고
엘리야는 이 산이 하느님의 산인 줄 모르고 동굴에 숨습니다.
이런 엘리야에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주님의 명령은 두 가지입니다.
나오라는 것과 산 위에 계신 주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나오라는 것입니까?
동굴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동굴에서 나오라는 것은
점점 빠져드는 무서움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고,
점점 빠져드는 무서운 풍랑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고,
점점 숨어드는 자기에게서 빠져나오라는 것이고,
점점 숨어드는 어둠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고,
점점 심해지는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느낌이나 습관은
빠져나오지 않으면 점점 빠져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빨리 빠져나오지 않으면 점점 더 빠져드는 수렁과 같습니다.
“점점 더”입니다.
“점점 더” 빠져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빠져나와야 하고
바로 이때 중요한 것이 빠져나오려는 의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포기한 것입니다.
오늘 풍랑에 빠진 베드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누가 풍랑에 빠지고 싶어 빠졌습니까?
그 엄청난 풍랑을 보는 순간 무서움에 빠져 풍랑에 빠진 것입니다.
누가 풍랑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아서 풍랑에 빠져 허우적댑니까?
자기의 능력이 없어서 못 빠져나오고 허우적대는 것입니다.
풍랑의 엄청난 위력을 보고
자기의 형편없는 능력을 보면
누구나 베드로처럼 풍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풍랑도 보지 않고,
자기도 보지 않고,
오직 주님을 보는 사람만이 풍랑에서 빠져나옵니다.
이것이 객관자의 눈이고 관상의 눈이고 하느님의 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산 위 주님 앞에 서라.”하시는데
주님을 보는 순간 우리는 풍랑에서 빠져나와 하느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 관상의 힘입니다.
관상,
이것은 그저 하느님을 보는 것이지만
하느님을 보는 순간,
풍랑의 위력보다 더 큰 하느님의 능력을 보는 순간
우리는 빠져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고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느님을 관상하는 것,
그 어떤 험난한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능력을 관상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이고,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 순간, 나머지는 다 하느님께서 하십니다.
풍랑을 제압하시고
손길을 내밀어 풍랑에서 우리를 끌어내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힘 미약해도 하느님 때문에 믿음과 희망과 의지를 가지게 되고,
전엔 두렵던
강한 바람도
지진도
불도
산 위 하느님 눈으로 얕이 봅니다.
하느님의 산 호렙에 오르기 전 엘리야는 다른 산 갈멜 산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이세벨의 수많은 거짓 예언자과 대결을 하였습니다.
우리 흔히 하는 말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眞劍勝負를 한 것입니다.
누가 진짜 예언자인지, 누가 최고의 하느님인지 판가름하는 승부이지만
지는 쪽은 죽는 승부입니다.
그런데 목숨을 건 이 싸움에서 주님의 힘으로 승리한 엘리야였지만
이세벨의 죽이겠다는 위협에 엘리야는 이세벨이 무서워 도망을 칩니다.
이렇게 도망을 쳐 도달한 산이 하느님의 산, 호렙이고
엘리야는 이 산이 하느님의 산인 줄 모르고 동굴에 숨습니다.
이런 엘리야에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주님의 명령은 두 가지입니다.
나오라는 것과 산 위에 계신 주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나오라는 것입니까?
동굴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동굴에서 나오라는 것은
점점 빠져드는 무서움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고,
점점 빠져드는 무서운 풍랑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고,
점점 숨어드는 자기에게서 빠져나오라는 것이고,
점점 숨어드는 어둠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고,
점점 심해지는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느낌이나 습관은
빠져나오지 않으면 점점 빠져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빨리 빠져나오지 않으면 점점 더 빠져드는 수렁과 같습니다.
“점점 더”입니다.
“점점 더” 빠져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빠져나와야 하고
바로 이때 중요한 것이 빠져나오려는 의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포기한 것입니다.
오늘 풍랑에 빠진 베드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누가 풍랑에 빠지고 싶어 빠졌습니까?
그 엄청난 풍랑을 보는 순간 무서움에 빠져 풍랑에 빠진 것입니다.
누가 풍랑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아서 풍랑에 빠져 허우적댑니까?
자기의 능력이 없어서 못 빠져나오고 허우적대는 것입니다.
풍랑의 엄청난 위력을 보고
자기의 형편없는 능력을 보면
누구나 베드로처럼 풍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풍랑도 보지 않고,
자기도 보지 않고,
오직 주님을 보는 사람만이 풍랑에서 빠져나옵니다.
이것이 객관자의 눈이고 관상의 눈이고 하느님의 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산 위 주님 앞에 서라.”하시는데
주님을 보는 순간 우리는 풍랑에서 빠져나와 하느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 관상의 힘입니다.
관상,
이것은 그저 하느님을 보는 것이지만
하느님을 보는 순간,
풍랑의 위력보다 더 큰 하느님의 능력을 보는 순간
우리는 빠져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고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느님을 관상하는 것,
그 어떤 험난한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능력을 관상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이고,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 순간, 나머지는 다 하느님께서 하십니다.
풍랑을 제압하시고
손길을 내밀어 풍랑에서 우리를 끌어내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힘 미약해도 하느님 때문에 믿음과 희망과 의지를 가지게 되고,
전엔 두렵던
강한 바람도
지진도
불도
산 위 하느님 눈으로 얕이 봅니다.
빠져나오지 않으면 점점 빠져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빨리 빠져나오지 않으면 점점 더 빠져드는 수렁과 같습니다.
“점점 더”입니다. 좋고 희망적인 생각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내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My Lord.!!! My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