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저는 어제까지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찬양 순례단과 함께 다녀온 것인데 당연히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그래서 주일 돌아와야 하는데 하루 늦게 들어오는 일도 생겼지만
아주 의미 있고 보람된 선교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침 그저께 주일이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전교주일이었기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선교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했고,
이번 순례를 통해서 어떤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는지
각기 생각을 해보고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제가 얘기한 것이 복음이 한 때는 제 안에 갇혀 있었고,
저를 겨우 벗어났을 때는 우리나라의 복음화밖에는 몰랐으며,
우리나라를 벗어나서는 우리민족의 복음화밖에 몰랐다가
이제 중국이나 다른 나라와 민족들의 복음화에 이르기까지
복음화 개념이 확장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러므로 복음은 이렇게
자신이나 가정이나 나라나 민족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나라와 민족과 문화 간의 벽이 의외로 높아서
복음도 그 벽을 넘지 못하고 갇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오늘 주님께서 이 장벽을 허무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는 성체대회 때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구호를 가지고 남북분단과 적대적인 관계를 극복하자고 하였고,
저는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프란치스칸의 기도를
오늘 에페소서의 한 부분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화해와 참 평화의 이치를 깨우치신 하느님,
아직도 남북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는 저희로 하여금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고
대립의 문화를 공존의 문화로 바꾸어가도록 도와주소서.”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제자라면
프란치스코처럼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하고,
평화의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형제를 적으로 만들지 말고,
반대로 적을 형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의 Fraternitas, 곧 형제애이고 형제성인데
저는 이번 문 대통령이 교황님을 알현했을 때 교황님이
형제애를 언급한 것이 참으로 적절하고 고마웠습니다.
교황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남북한의 지도자들이....형제애를 기반으로
화해와 평화 정책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도록 전 세계와 기도하겠다.”
지금 우리는 형제성을 회복하고 평화를 이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 남북이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점에 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평화와 화해를 이룩하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형제로 그리고 형제적 공동체로 하느님께 나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뜻에서 오늘 에페소서는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함께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원수로 서로 마주 보고 으르렁 거리지 않을 뿐 아니라
형제로 함께 하느님을 보고 손잡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하느님 나라의 한 시민이요 한 가족임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오늘입니다.
한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한 가족암을 생각 할 때마다 한없이 행복하고 감사 드리게 됩니다
주님의 섭리가 그들에게도 좋게 만드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