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1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전례력으로 새해를 맞이한 것이고 나해가 끝나고 다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과 어제와 그제 복음이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전례력으로 한 해를 끝내고 새 해를 맞이하면서
똑같은 복음을 계속 듣는 것인데 이 복음이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과 동시에 주님의 오심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에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오심을 같이 묵상하라는
가르침을 교회의 전례는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해를 끝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여러분은 어떤 마음입니까?
혹시 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맞이하는 학생과 같은 마음이 아닙니까?
방학동안 신나게 노느라 방학숙제를 하지 않고 개학을 맞이한 학생의 마음.
또 지금 한 해의 달력을 마지막 한 장 남겨놓고 있는데 정신없이 살아서
뭘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는 그런 사람의 마음?
아니면 인생의 종착역에 거의 다 왔는데
한 생을 돌아보며 뭐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는 그런 노인의 마음?
오늘 주님은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 데 없는 세상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오실 때 두 부류의 사람으로 갈립니다.
하나는 흥청대며 사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말에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 말의 기원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주색잡기에 빠져 살던 연산군이 자신의 흥을 돋우어 줄 여인을 전국에서
모아 그들을 ‘흥청’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연산군의 권세를 뒤에 엎고
위세를 부리며 흥청대다가 연산군과 함께 망한 것을 빗대어
흥청이 망청이 되었다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흥청대며 살면 망청이 되고 맙니다.
가끔 일하러 나가면 새벽까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인사불성이어서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얼마나 삶이 고통스럽고 고되면 저렇게 술을 많이 마실까
그에 대한 연민의 정에 젖어 있다가도
문득 나도 저 사람처럼 술독에 빠져 살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면
“당신 누구쇼?”하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릴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말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어디에 빠지면 그것 외의 다른 것은 우리 관심에서 빠지게 됩니다.
술독에 빠져 살면 가족은 내 관심에서 빠지고,
사랑에 빠지면 다른 사람은 우리 관심에서 빠지고
도박이나 놀이에 빠지면 돈은 내 지갑에서 빠져나가고
세상에 빠지면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는 우리 관심에서 빠지게 마련입니다.
대림 시기는 이렇듯 세상에 빠져 하느님이 빠져있는 삶에서 돌아서서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는 시기입니다.
사순 시기와 마찬가지로 회개, 곧 주님께로 돌아서는 시기이고
하느님 앞에 머물며 늘 깨어 기도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대림 시기는 하느님께만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주님 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뿐 아니라
서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사랑을 키워 주시고 풍성하게 해 주셔서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고
또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이 굳건해져서 우리 주 예수께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시는 날 우리 주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복음의 비유에서 주님께서는 최후심판 때 두 부류로 갈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른 편의 양과 왼 편의 염소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양들을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그분의 지체들인
이웃을 사랑하면 주님의 오른 편의 양이 되어 상급을 받겠지만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아무런 사랑 실천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지체를 보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죄로 벌을 받게 됩니다.
깨어있는 것은 이웃의 모습으로 현존하시는 주님께도 깨어있는 것입니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느님을 알아보는 놀라운 눈을 가지는 겁니다.
이 대림 시기 세상에 빠져 하느님도 이웃도 모르고 살던 삶에서
이제 하느님과 이웃의 고단하고 힘든 삶에 깨어 살도록 합시다.
연말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도 불우이웃에 온정을 베푸는 것으로 한해를 잘
마감하려 하는데 하느님 사랑을 믿는 우리는 더 그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끄럽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