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성탄이 바로 코앞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시는 주님께서 내게도 오실까,
내게도 오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것만 묵상하였는데
오늘 미카서가 너 베들레헴아 너에게서 주님께서 나오시리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주님께서 내게 오시는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주님께서 나오시는/탄생하시는 것도 생각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서도 주님께서 나오시게 하려면
나는 또 다른 베들레헴이 되어야 하고,
베들레헴의 마구간이 되고, 구유가 되어야 하며,
주님께서 바로 그 몸에서 태어나신 마리아가 되어야겠지요.
그런데 베들레헴이나 마구간과 구유나 마리아의 공동점이 있습니다.
보잘것없음입니다.
오늘 미카서가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이라고 말한 대로입니다.
프란치스칸적으로 얘기하면 작은 자들의 낮은 곳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왜 이런 곳에서 나오시겠습니까?
화려하고 멋진 곳이 아니고 왜 이리 누추한 곳입니까?
우선 화려하고 멋진 곳은 이 세상 권력자들이 차지했습니다.
여관도 돈 많은 사람들로 만원이었습니다.
자기 자녀를 낳은 사람들도 주님을 위한 자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오실 주님께서 가난하고 작은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내려오시는 분입니다.
하늘로 오르시는 분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분이고,
이렇게 내려오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두 번째 독서인 히브리서는 주님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라고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주님께서 번제물이나 희생제물을 바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는 것이고,
그것도 아버지께 바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바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육화는 아버지 하느님이 당신 아들을
우리 인간에게 바치시는 하느님의 제사이고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우리에게 내려오시고 낮은 곳으로 오신 겁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오시기에
이런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오시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또한 오시고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탄생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할 때 우리는 그분의 형제들입니다.
신성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지니고
우리의 마음과 몸에 그분을 모시고 다닐 때 우리는 어머니들입니다.
표양으로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
내 뜻과 내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사랑을 잉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당연하게도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사랑을 잉태치 않고 주님을 낳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묵상하며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오늘입니다.
평화와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