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4 성탄 밤미사
오늘 고요한 이 밤, 거룩한 이 밤,
빛으로 오시는 그분을,
겸손으로 오시는 그분을,
보잘 것 없는 이들의 희망으로 오시는 그분을,
순수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그분을
기쁨 가운데 맞이 하시길 축원하옵니다.
즈가르야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했었지요.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루카 1,78-79)
옛적에는 참 별을 많이 보았습니다.
요즘은 별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도시의 인공 불빛들이 너무 많아서도 그렇고,
건물들이 높고 빼곡해서
하늘을 도무지 쳐다보기도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곳 가평 산골은 별보기 좋은 곳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날이 너무도 맑고 깨끗해서
별이 더욱 선명하게 잘 보일 겁니다.
여하튼 오늘만큼은 꼭 밤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찾아 보십시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라."는 소명을 받은 우리는 더더욱 별들을 자주 쳐다 보아야 합니다.
유난히 반짝이며 내 눈에 들어오는 한 별이 있을 겁니다.
벗님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벗님의 별이 있을 겁니다.
그 별이 지금 빛나며 벗님을 비추어주는 것같지만
사실 벗님이 태어난 순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줄곧 낮이나 밤이나 벗님을 비추며
벗님의 벌걸음을 인도해 왔습니다.
벗님이 그 별을 늘 찾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을 따름이죠.
하느님께서는 저 별처럼
언제나 벗님을 비추며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벗님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고,
앞으로도 벗님을 그렇게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겁니다.
그분은 별처럼 오늘 벗님에게 오십니다.
그분은 벗님의 온갖 허물을 들춰내어
질책하시러 오시지 않고,
오히려 벗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한해 동안 벗님이 행한 수고를 치하하고
격려해 주시기 위해 오시는 겁니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늘밤 해맑은 아기의 모습으로
벗님을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드리며 경축하십시오.
오, 거룩한 밤이여, 별이 쏟아지는 밤이여,
은총이 충만한 밤이여,
온누리에 평화가 가득 넘치는 밤이여.
그 별이 온갖 어둠의 그림자에 둘러쌓여 있는
여러분을 비추시어 여러분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겁니다.
그 별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가정을
꼭 찾아가길 기원합니다.
별의 모양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아름답고 훈훈한 성탄밤 되십시오.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 나누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는 목동들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2)
예수님의 출생비화는 어느 유명인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행중에 출생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출산준비와 분만과정을 거치지 못합니다. 산파도 없고 따뜻한 집도 없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악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말구유에서 동물들 곁에서 태어납니다.
또 예수님은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서 태어나고 예수님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보잘것없는 목동들이었습니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을 가장 먼저 드러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루카 2,10)은 소위 인물들을 통해 알려지지 않고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려진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는데"(티토 2,11) 그 은총은 평범하고 겸손한 사람들만 알아봅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아기 중 한 아기일 뿐입니다. 그분이 구세주임을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매년 오시는데도 그분을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분을 알아보는 우리는 참으로 복됩니다. 우리는 큰 빛을 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우리는 성탄의 신비를 '강생육화의 신비'라고 합니다. 내려옴의 신비이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신비입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겸손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겸손하신 하느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높은 사람이 더 깊이 내려갈 때 감동을 줍니다. 우리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이 이토록 가난하고 겸손하신데,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찌 교만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하늘나라를 꿈꾸는 우리는 성녀 소화 데레사의 말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높이 오르기를 원하는 이는 깊이 내려가야 한다."
벗님 여러분, 다시 성탄을 축하합니다.
하느님의 겸손에 감동하셨으니
정말 더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성탄축제를 제대로 지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예수님은 아직 벗님에게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벗님 태중에 아직 머물러 있습니다.
그분이 내 안에서 새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나의 겸손만을 필요로 하십니다.
이제 이 겸손의 축제를 기쁘게 시작합시다!
오늘 고요한 이 밤, 거룩한 이 밤,
빛으로 오시는 그분을,
겸손으로 오시는 그분을,
보잘 것 없는 이들의 희망으로 오시는 그분을,
순수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그분을
기쁨 가운데 맞이 하시길 축원하옵니다.
즈가르야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했었지요.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루카 1,78-79)
옛적에는 참 별을 많이 보았습니다.
요즘은 별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도시의 인공 불빛들이 너무 많아서도 그렇고,
건물들이 높고 빼곡해서
하늘을 도무지 쳐다보기도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곳 가평 산골은 별보기 좋은 곳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날이 너무도 맑고 깨끗해서
별이 더욱 선명하게 잘 보일 겁니다.
여하튼 오늘만큼은 꼭 밤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찾아 보십시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라."는 소명을 받은 우리는 더더욱 별들을 자주 쳐다 보아야 합니다.
유난히 반짝이며 내 눈에 들어오는 한 별이 있을 겁니다.
벗님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벗님의 별이 있을 겁니다.
그 별이 지금 빛나며 벗님을 비추어주는 것같지만
사실 벗님이 태어난 순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줄곧 낮이나 밤이나 벗님을 비추며
벗님의 벌걸음을 인도해 왔습니다.
벗님이 그 별을 늘 찾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을 따름이죠.
하느님께서는 저 별처럼
언제나 벗님을 비추며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벗님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고,
앞으로도 벗님을 그렇게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겁니다.
그분은 별처럼 오늘 벗님에게 오십니다.
그분은 벗님의 온갖 허물을 들춰내어
질책하시러 오시지 않고,
오히려 벗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한해 동안 벗님이 행한 수고를 치하하고
격려해 주시기 위해 오시는 겁니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늘밤 해맑은 아기의 모습으로
벗님을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드리며 경축하십시오.
오, 거룩한 밤이여, 별이 쏟아지는 밤이여,
은총이 충만한 밤이여,
온누리에 평화가 가득 넘치는 밤이여.
그 별이 온갖 어둠의 그림자에 둘러쌓여 있는
여러분을 비추시어 여러분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겁니다.
그 별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가정을
꼭 찾아가길 기원합니다.
별의 모양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아름답고 훈훈한 성탄밤 되십시오.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 나누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는 목동들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2)
예수님의 출생비화는 어느 유명인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행중에 출생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출산준비와 분만과정을 거치지 못합니다. 산파도 없고 따뜻한 집도 없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악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말구유에서 동물들 곁에서 태어납니다.
또 예수님은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서 태어나고 예수님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보잘것없는 목동들이었습니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을 가장 먼저 드러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루카 2,10)은 소위 인물들을 통해 알려지지 않고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려진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는데"(티토 2,11) 그 은총은 평범하고 겸손한 사람들만 알아봅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아기 중 한 아기일 뿐입니다. 그분이 구세주임을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매년 오시는데도 그분을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분을 알아보는 우리는 참으로 복됩니다. 우리는 큰 빛을 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우리는 성탄의 신비를 '강생육화의 신비'라고 합니다. 내려옴의 신비이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신비입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겸손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겸손하신 하느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높은 사람이 더 깊이 내려갈 때 감동을 줍니다. 우리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이 이토록 가난하고 겸손하신데,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찌 교만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하늘나라를 꿈꾸는 우리는 성녀 소화 데레사의 말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높이 오르기를 원하는 이는 깊이 내려가야 한다."
벗님 여러분, 다시 성탄을 축하합니다.
하느님의 겸손에 감동하셨으니
정말 더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성탄축제를 제대로 지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예수님은 아직 벗님에게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벗님 태중에 아직 머물러 있습니다.
그분이 내 안에서 새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나의 겸손만을 필요로 하십니다.
이제 이 겸손의 축제를 기쁘게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