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 성탄 낮미사
성탄 축하합니다. ^^
여러분에게도 그분께서 찾아오셨지요?
어떤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오셨나요?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저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 인간을 내려다 보시며 심판의 상벌을 준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이제 하늘을 열어젖히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사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 이것이 성탄의 신비죠!
하느님이 나를 위해 이토록 작아지고 낮아지셨다면 나는 황공한 마음으로 더욱 겸손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하고 성탄의 기쁨을 참으로 노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와 함께 있기 위해 낮아지신 그분과 함께 기쁨의 성탄축제 보내시길 빕니다.
어제밤, 우리는 별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메시아의 모습을 묵상했었는데, 오늘 요한 사도는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오심을 마치 어둠 속의 빛줄기처럼 오셨다고 표현하네요.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어둠과 죽음의 그늘 속에 신음하는 모든 인류에게 빛이 되어 그 어둠을 몰아내시고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 준 사건이 예수 성탄의 의미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작 그 빛을 못 알아볼 뿐만 아니라 맞아들이지도 않는다고 요한은 안타까워하네요.(요한 1,10-11)
사실 아무리 짙은 어둠도 가녀린 빛 한줄기 앞에서도 홀연히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리지요. 내가 이 성탄에 나를 찾아오신 하느님을 만났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 안에 있는 그 짙은 어둠이 더이상 어둠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나는 빛으로 오신 하느님을 만난 겁니다. 반면, 아직도 나의 죄에 대한 무게와 세상 근심걱정의 어둠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면 아직 그분을 못 만난 게지요.
그러니 벗님이여, 오늘은 창가로 들어와 그대를 환히 비추는 따스한 햇살을 즐겨 맞아들이십시오. 따사로운 그 빛을 즐기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내면의 어둠은 사라집니다. 어둠을 즐기지 마십시오. 스스로 어둠에 갇히지 마십시오. 어둠 속에 있다고 생각되면 빨리 빛을 찾아 움직이고 그 빛을 받아들이기만 하십시오. 그분은 이렇게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빛을 받은 사람은 빛이 얼마나 고마운지 잘 알게 되고,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들, 특히 어둠의 그늘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빛이 되어주려고 니력하기 마련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빛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오셨다고 밝힙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요한 1,14)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이셨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고 진리(로고스)이십니다. 그 말씀이 이제 우리와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육화되어 우리 가운데 사시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제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상상이나 지식의 덩어리로 찾아낼 수 있는 추상적인 실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 안에서 발견되고 체현된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상상속의 실재여서 가녀린 빛 한줄기에도 사라지듯이, 참 지식인 하느님의 지혜도 우리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경청하기만 하면 찾아만날 수 있는 실재가 되었습니다. 창문을 열고 커튼을 걷어올리고 빛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오만가지 세상 지식에 그게 진리인 양 떠드는 소음 속에서, 성경말씀인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묵상하기만 하면 소음은 사라지고, 참 지식인 하느님의 뜻이 보이게 됩니다.
말씀은 사람으로 육화 되었기에, 사람들 안에서 가장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숨어 있습니다. 성탄의 신비를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압니다. 그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또 육화된 말씀은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 세상이 들려주는 소리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식별해 낼 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과 발자취가 담겨있는 성경과 교회 전승이 가르쳐주는 성전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식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말씀을 알아들을 귀입니다.
하느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당신이 만드신 우리 인간들과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 인간들은 대화보다는 독백을 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의 대화입니다. 사랑의 대화는 상대방을 참으로 진지하게 들어줄 줄 아는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니 말씀으로 오시는 그분을 마중하기 위해 들을 줄 아는 귀를 청합시다.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청합시다.
예수님은 그 옛날에 어둠속의 빛으로 소음 속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듯이, 올해도 어김없이 빛이요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분은 올 한해도 어둠속에 신음하고 길을 못찾고 있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 주시고, 말씀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실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빛 가운데로 나아갑시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말씀 가운데로 나아갑시다.
빛이 세상에 오셨지만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우리 가운데 계시지만 그분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답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 소음 가운데 머물러 있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노라!"(요한 1,14)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은총의 빛과 진리의 말씀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 본 빛과 말씀이 올 한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성탄8일 축제를 시작합니다. 우리도 이 구원의 기쁜 소식, 빛과 말씀으로 이 구원이 오게 되었음을 신나게 선포합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이사 52,7) 아멘.
성탄 축하합니다. ^^
여러분에게도 그분께서 찾아오셨지요?
어떤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오셨나요?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저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 인간을 내려다 보시며 심판의 상벌을 준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이제 하늘을 열어젖히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사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 이것이 성탄의 신비죠!
하느님이 나를 위해 이토록 작아지고 낮아지셨다면 나는 황공한 마음으로 더욱 겸손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하고 성탄의 기쁨을 참으로 노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와 함께 있기 위해 낮아지신 그분과 함께 기쁨의 성탄축제 보내시길 빕니다.
어제밤, 우리는 별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메시아의 모습을 묵상했었는데, 오늘 요한 사도는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오심을 마치 어둠 속의 빛줄기처럼 오셨다고 표현하네요.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어둠과 죽음의 그늘 속에 신음하는 모든 인류에게 빛이 되어 그 어둠을 몰아내시고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 준 사건이 예수 성탄의 의미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작 그 빛을 못 알아볼 뿐만 아니라 맞아들이지도 않는다고 요한은 안타까워하네요.(요한 1,10-11)
사실 아무리 짙은 어둠도 가녀린 빛 한줄기 앞에서도 홀연히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리지요. 내가 이 성탄에 나를 찾아오신 하느님을 만났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 안에 있는 그 짙은 어둠이 더이상 어둠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나는 빛으로 오신 하느님을 만난 겁니다. 반면, 아직도 나의 죄에 대한 무게와 세상 근심걱정의 어둠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면 아직 그분을 못 만난 게지요.
그러니 벗님이여, 오늘은 창가로 들어와 그대를 환히 비추는 따스한 햇살을 즐겨 맞아들이십시오. 따사로운 그 빛을 즐기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내면의 어둠은 사라집니다. 어둠을 즐기지 마십시오. 스스로 어둠에 갇히지 마십시오. 어둠 속에 있다고 생각되면 빨리 빛을 찾아 움직이고 그 빛을 받아들이기만 하십시오. 그분은 이렇게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빛을 받은 사람은 빛이 얼마나 고마운지 잘 알게 되고,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들, 특히 어둠의 그늘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빛이 되어주려고 니력하기 마련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빛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오셨다고 밝힙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요한 1,14)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이셨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고 진리(로고스)이십니다. 그 말씀이 이제 우리와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육화되어 우리 가운데 사시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제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상상이나 지식의 덩어리로 찾아낼 수 있는 추상적인 실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 안에서 발견되고 체현된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상상속의 실재여서 가녀린 빛 한줄기에도 사라지듯이, 참 지식인 하느님의 지혜도 우리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경청하기만 하면 찾아만날 수 있는 실재가 되었습니다. 창문을 열고 커튼을 걷어올리고 빛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오만가지 세상 지식에 그게 진리인 양 떠드는 소음 속에서, 성경말씀인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묵상하기만 하면 소음은 사라지고, 참 지식인 하느님의 뜻이 보이게 됩니다.
말씀은 사람으로 육화 되었기에, 사람들 안에서 가장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숨어 있습니다. 성탄의 신비를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압니다. 그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또 육화된 말씀은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 세상이 들려주는 소리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식별해 낼 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과 발자취가 담겨있는 성경과 교회 전승이 가르쳐주는 성전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식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말씀을 알아들을 귀입니다.
하느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당신이 만드신 우리 인간들과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 인간들은 대화보다는 독백을 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의 대화입니다. 사랑의 대화는 상대방을 참으로 진지하게 들어줄 줄 아는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니 말씀으로 오시는 그분을 마중하기 위해 들을 줄 아는 귀를 청합시다.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청합시다.
예수님은 그 옛날에 어둠속의 빛으로 소음 속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듯이, 올해도 어김없이 빛이요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분은 올 한해도 어둠속에 신음하고 길을 못찾고 있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 주시고, 말씀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실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빛 가운데로 나아갑시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말씀 가운데로 나아갑시다.
빛이 세상에 오셨지만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우리 가운데 계시지만 그분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답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 소음 가운데 머물러 있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노라!"(요한 1,14)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은총의 빛과 진리의 말씀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 본 빛과 말씀이 올 한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성탄8일 축제를 시작합니다. 우리도 이 구원의 기쁜 소식, 빛과 말씀으로 이 구원이 오게 되었음을 신나게 선포합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이사 52,7) 아멘.
우리에게 오신 주님,
찬미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