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회서는 모든 지혜가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말로 시작하면서
지혜란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얘기합니다.
하여 우리도 지혜란 어떤 것인지 묵상해봄도 좋을 것입니다.
일단 지혜란 뭘 아는 것이고 그래서 늘 지식과 비교가 되는데
지식이 사물이나 상황이나 이치 등 외부정보를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행복과 행복의 비결에 대해서 아는 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잡다한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우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거나
아는 것이 병이 되게 하거나 아는 것을 잘못 써 불행케 된다면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지혜가 많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실로 지식이 많은 사람 중에 지혜로운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지식은 자랑을 하게하고 교만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하늘과 땅의 많은 정보를 아는 것처럼
많이 아는 것을 가지고 자랑할 수 없다고 프란치스코는 얘기했지요.
“한 마리의 마귀는 그 모든 사람보다 천상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고,
지금은 지상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지혜는 칼잡이가 칼을 잘 다룰 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칼을 수술하는데 쓸 수도 있지만 사람을 찌르는데 쓸 수도 있는 것처럼
모두의 행복을 위해 지식을 활용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런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머리의 공부를 많이 하여 지식을 많이 얻는 것처럼
마음의 공부를 하거나 정신 수양을 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건가요?
실제로 불교나 많은 종교들이 이런 식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하고,
그래서 우리의 많은 인간적 지혜는 바보스런 짓으로 인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얻곤 하지요.
예를 들어 돈 욕심을 부리다 친구도 잃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은 뒤에야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돈 때문에 인심을 잃기보다 돈으로 인심을 얻어야 함도 깨닫게 되지요.
그러니까 어리석음으로 인한 불행체험이 행복의 지혜를 찾게 하는 거지요.
이것이 신앙이 없는 사람이 인간적인 지혜를 얻는 방법이라면
오늘 집회서는 참다운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
지혜의 근원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다.
주님께서는 지혜를 만드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인간경험의 지혜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한다면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는 영혼이 영원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거지요.
그러기에 오늘 집회서는 하느님을 아는 것이 지혜 중의 지혜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지혜로움 중의 지혜로움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당신이 스스로 나타내보이시지 않으면
우리 인간이 볼 수 없고 알 수 없기에 하느님을 아는 지혜는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데 누구에게 그 지혜를 주시냐 하면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신다고 오늘 집회서는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옹졸한 우리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당신이 주시는 선물을 기꺼이 받기 때문이지요.
돼지에게 진주처럼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개떡같이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지혜를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을
소중히 받는 우리이고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