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오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고
선택을 강요하고 사랑하라고, 말씀을 들으라고, 매달리라고 압박하는 듯한
느낌을 줘 사람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들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나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말씀을 들으라는 것은 기꺼이 수용하겠지만
하느님께 매달리라는 말씀은 너무 지나친 요구가 아닌지 생각이 살짝 들며
이 매달리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매달릴 것인지 생각해봤습니다.
왜냐면 전에부터 간간이 생각했던 것 그러나 아직 결심이 서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인데 제게 암이 발견되면 수술을 할 것인가,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할 것인가가 그것입니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은 여기까지라고 받아들이고,
수술을 하거나 살려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막상 암에 걸리면 제가 수술도 하고 싶고 살려달라고
매달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저에 대한 의심도 있기에 결심이 안 선 겁니다.
어쨌거나 결심이 아직 안 섰어도 지금 생각으로는 수술이 무망하다할 경우
수술을 안 하고 싶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생명만큼만 살고 싶습니다.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신명기가 하느님께 매달리라고 한 것이
이 세상에서의 생명 연장을 위해 하느님께 매달리라는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다는 생명과 죽음도 이런 것이 아닐 것이고,
축복과 저주도 이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는 몰라도 영원한 생명과 죽음,
이 영원한 생명과 죽음과 연결된 축복과 저주일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과도 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자기 목숨>과 <목숨>을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여기서 <자기 목숨>은 뭐고, 그냥 <목숨>은 무엇입니까?
문맥상 <자기 목숨>과 그냥 <목숨>은 분명 다릅니다.
<자기 목숨>은 내 안에 들어온 목숨이고 언젠가는 나갈 목숨이며,
그냥 <목숨>은 목숨/생명 그 자체이고, 하느님의 목숨/생명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의 코에 숨을 불어넣으시자 붙은 숨이 <자기 목숨>이고,
하느님의 숨이 그냥 <목숨>입니다.
우리의 목숨은 하느님의 숨이 우리의 목에서 끊이지 않고
들락날락할 때까지만 붙어있고, 그 숨이 끊어지면
우리 목숨, 생명이라는 것도 끊어지는 거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연장은 될지언정 언젠가 끊어질 목숨,
내 안에 갇힌 목숨은 구하려고 애쓰거나 하느님께도 매달리지 말아야 하고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목숨, 하느님의 목숨을 구하고
그 목숨을 위해 하느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매달여야 할 것은 내 목숨이 아니라 하느님의
목숨이고 하느님께 매달림 그것이 바로 매일 성령을 숨 쉬는 기도입니다.
사실 생명이 걸린 기도만큼 절실한 기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저도 매일 제 주변의 편찮은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그중에서도 생사가 걸린 분들을 위해 제일 절실하게 기도하는데,
그런데 이보다 더 절실히 해야 할 기도가
영원한 생명을 위한 기도임을 다시 한 번 생각게 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