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30년 만의 휴식’이라는 책은 정신분석학 의사가 자신의 지난 30년을 돌아보면서 쓴 책입니다. 그는 서문에서 말합니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선 박사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일벌레 선 박사가 많다. 돈과 지위 인기를 얻으면 만족이 있을 것으로 알고 숨차게 뛰고 또 뛰는 ‘또 다른 선 박사들’ 말이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지위가 높아지고 인기를 얻어 보아도 만족은 없고 마음이 공허한 ‘선 박사들’이 많다. 외부적으로는 성공을 했으나 내면적으로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공은 했지만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선 박사들과 아직 성공에 이르지 못해, 성공만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여전히 성공을 위해 달리는 선 박사들, 또한 이미 나에겐 성공은 물 건너 가 버린 일이라 자포자기하며 불행함을 느끼는 선 박사들에게 성공 그 자체가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애기를 하고 싶다.”
이처럼 우리가 모으고 가지고 오르려는 것은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다른 어떤 것으로 무장하지 않으십니다. 뛰어난 말주변이나 학식, 많은 재물이나 도움을 줄 사람들. 그러나 먼저 가장 중요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신을 채우십니다. 사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이고 그밖의 다른 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세례는 물로 씻는 것입니다. 씻음으로써 부차적인 것은 다 씻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육체는 물로 씻지만 우리의 영혼은 뉘우침의 눈물로 씻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생명이 드러납니다.
바리사이들은 더 의롭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하느님의 사랑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를 받으러 온다는 것은 자신을 죄인으로, 의롭지 않고 부당하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이고 하느님께도 버림받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창피한 노릇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고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평화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이런 길을 통해서 하늘이 열리고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람들이 채우려고 했던 그 행복이 세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사회가 더욱더 1등만을 선호하고 특정 소수만이 주도권을 쥐고 살아간다면 - 사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그러지만 - 사람들의 행복이 증가하기보다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더 증가할 것입니다. 더 위로 오름으로써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내려감으로써 진정 우리가 바라던 참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종이라야 오늘 제2독서에서 말씀하시듯이 “부러진 갈대”라고 해서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라고 해서 끄지도 않고”, 자신도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사랑으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위로 오르고 가지고 모으는 사람은 설령 그들이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진정으로 채워줄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처럼 “기쁨의 기름을 바른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참다운 기쁜 소식을”(감사송)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안에서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목표가 가난 퇴치도 정치 제도의 확립도 생태나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라야 합니다. 바로 기쁨의 기름, 어떠한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는 그 기쁨의 기름을 주어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은 높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던 교수직을 사임하고 라르쉬(정신지체 장애인들과 신체 장애인들을 위해 1964년에 설립된 국제 단체)에 들어갔습니다. 헨리의 임무는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생소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는 등 여러 가지 허드렛일로 받는 봉급도 당연히 적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려운 고생과 낮은 봉급 속에서도 언제나 기뻐하고 만족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고생을 자처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올라가는 길만 신경을 썼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말을 듣고, 언제나 1등으로 달렸으며,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에까지 왔다. 나의 저서 20여권은 뭇사람들의 인기를 끌었으며, 오직 성공을 위하여 더 높이, 더 크게 꼭대기만을 향하면서 오르막길만 달려왔다.
그러나 한 정신박약아를 만나면서 인간이란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내리막길을 갈 때 더 성숙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르막길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는데 내리막길에서는 복음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관구회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그것도 부족하여 보다 더 주님을 가까이 따르겠다고 서약까지 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주어야 할 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채워주기 위한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서 우리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서 살았고 살려고 계획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그리고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은, 그리고 사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진정 바라는 것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예수님께서 (세상 안에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는데”, 베드로 성인은 이것이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관구회의를 앞두고 맞이하는 주님의 세례 축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세례 축일을 통해 우리의 세례와 서약을 되새기며 나 자신부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새롭게 씻어내도록 해야겠습니다.
‘30년 만의 휴식’이라는 책은 정신분석학 의사가 자신의 지난 30년을 돌아보면서 쓴 책입니다. 그는 서문에서 말합니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선 박사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일벌레 선 박사가 많다. 돈과 지위 인기를 얻으면 만족이 있을 것으로 알고 숨차게 뛰고 또 뛰는 ‘또 다른 선 박사들’ 말이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지위가 높아지고 인기를 얻어 보아도 만족은 없고 마음이 공허한 ‘선 박사들’이 많다. 외부적으로는 성공을 했으나 내면적으로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공은 했지만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선 박사들과 아직 성공에 이르지 못해, 성공만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여전히 성공을 위해 달리는 선 박사들, 또한 이미 나에겐 성공은 물 건너 가 버린 일이라 자포자기하며 불행함을 느끼는 선 박사들에게 성공 그 자체가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애기를 하고 싶다.”
이처럼 우리가 모으고 가지고 오르려는 것은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다른 어떤 것으로 무장하지 않으십니다. 뛰어난 말주변이나 학식, 많은 재물이나 도움을 줄 사람들. 그러나 먼저 가장 중요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신을 채우십니다. 사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이고 그밖의 다른 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세례는 물로 씻는 것입니다. 씻음으로써 부차적인 것은 다 씻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육체는 물로 씻지만 우리의 영혼은 뉘우침의 눈물로 씻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생명이 드러납니다.
바리사이들은 더 의롭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하느님의 사랑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를 받으러 온다는 것은 자신을 죄인으로, 의롭지 않고 부당하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이고 하느님께도 버림받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창피한 노릇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고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평화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이런 길을 통해서 하늘이 열리고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람들이 채우려고 했던 그 행복이 세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사회가 더욱더 1등만을 선호하고 특정 소수만이 주도권을 쥐고 살아간다면 - 사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그러지만 - 사람들의 행복이 증가하기보다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더 증가할 것입니다. 더 위로 오름으로써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내려감으로써 진정 우리가 바라던 참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종이라야 오늘 제2독서에서 말씀하시듯이 “부러진 갈대”라고 해서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라고 해서 끄지도 않고”, 자신도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사랑으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위로 오르고 가지고 모으는 사람은 설령 그들이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진정으로 채워줄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처럼 “기쁨의 기름을 바른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참다운 기쁜 소식을”(감사송)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안에서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목표가 가난 퇴치도 정치 제도의 확립도 생태나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라야 합니다. 바로 기쁨의 기름, 어떠한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는 그 기쁨의 기름을 주어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은 높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던 교수직을 사임하고 라르쉬(정신지체 장애인들과 신체 장애인들을 위해 1964년에 설립된 국제 단체)에 들어갔습니다. 헨리의 임무는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생소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는 등 여러 가지 허드렛일로 받는 봉급도 당연히 적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려운 고생과 낮은 봉급 속에서도 언제나 기뻐하고 만족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고생을 자처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올라가는 길만 신경을 썼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말을 듣고, 언제나 1등으로 달렸으며,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에까지 왔다. 나의 저서 20여권은 뭇사람들의 인기를 끌었으며, 오직 성공을 위하여 더 높이, 더 크게 꼭대기만을 향하면서 오르막길만 달려왔다.
그러나 한 정신박약아를 만나면서 인간이란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내리막길을 갈 때 더 성숙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르막길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는데 내리막길에서는 복음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관구회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그것도 부족하여 보다 더 주님을 가까이 따르겠다고 서약까지 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주어야 할 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채워주기 위한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서 우리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서 살았고 살려고 계획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그리고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은, 그리고 사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진정 바라는 것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예수님께서 (세상 안에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는데”, 베드로 성인은 이것이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관구회의를 앞두고 맞이하는 주님의 세례 축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세례 축일을 통해 우리의 세례와 서약을 되새기며 나 자신부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새롭게 씻어내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마음에 와 닿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