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계속되는 예레미야서가 오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심과 어린양처럼 돌아가실 것임을 얘기하는 거지요.
여기서 어린양은 도살장에 끌려가는데도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존재입니다.
어린양은 죽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죽을 위험이 있는 줄도 모르며, 그러니
도살장이 있고, 죽이려드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더더욱 모르는 존재입니다.
자기 안에 악이 없을 뿐 아니라 악의 경험도 없고
자기가 죄를 저질러 남에게 해악을 끼친 경험도 없으며,
남을 거꾸러트리거나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경험은 더더욱 없기에
도살장에 가는지도 음모에 의해 가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순한 어린양이 죽음과 음모를 알아차리게 된 것이
하느님께서 알려주시어 알아차리게 되었다고 예레미야서는 말합니다.
우리의 보통 경험은 악한 자들의 음모에 한 번 또는 그 이상 당하는,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악한 사람이나 음모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오늘 예레미야서는 하느님이 알려주셔서 알아차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쁜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자녀들에게 얘기합니다.
친구로 인해 악의 세계를 배우지 말고 그 세계에 빠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악한 것은 악한 사람에 의해서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악의 세계를 접하지 못하게 하고 모르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친구하고 술을 배우는 것보다 부모와 술을 배우는 것이 더 낫듯이
악령에 의해서 악을 아는 것보다 성령에 의해서 악을 아는 것이 더 나으며,
인간, 그것도 악한 인간에 의해서 악을 아는 것보다
하느님에 의해서 악을 아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악과 음모에 대책 없이 당하는 숙맥이 아니라
악과 음모도 알고 그 악과 음모에 신적으로 대처하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도 잘 알고 하느님 나라도 잘 아는 존재이며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적으로/하느님스럽게 대처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원수들 음모에 저항치 않고 복수를 하느님께 맡기는 겁니다.
우선 저항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자기 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만 악의 세력과 싸우고 이기려 들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그래서 하느님을 힘입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힘으로 이기고 그래서 하느님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승리하려 드는데 하느님의 어린양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승리하시도록 자기는 빠지는 존재이고 굳이 내가 필요하다면
나를 통해 하느님께서 승리하시도록 자기를 내어드리는 존재입니다.
사실 자기 힘으로 승리하려고 해도 자기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은 복수에 대한 것인데 그 복수도 하느님께 청합니다.
무슨 하느님의 어린양이 복수를 생각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복수할 힘도 어린양에게는 없고,
힘이 없어도 복수할 힘을 자기에게 달라고 청하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피를 흘리지 자기 손에 피 묻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복수문제는 하느님 손에 맡기기 위해서인데 우리도 복수심을 기도로 돌리고
통쾌하게 복수하고픈 마음에 내 손으로 복수하려들지는 말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적당히 악인을 주물러 주시고 죄는 벌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