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오늘의 축일은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찾아가 만나는 아름다운 만남을 소개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많은 만남들이
이런 만남이기를 바라는 교회의 뜻을 전례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겁니다.
실로 살면서 참으로 많은 만남이 있고 또 있어야 합니다.
만남이 많지 않다면 만남이 불행이어서 인간을 기피하는,
심하게 얘기하면 잘못 살거나 실패한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긴 하지만 모든 만남이 좋은 것이 아니고,
특히 우리 신앙인에게는 피해야 할 만남이 있고 가져야 할 만남이 있는데
오늘 두 분의 만남이 바로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만남의 모법입니다.
두 분의 만남은 우선 거룩한 만남, 곧 성사적인 만남입니다.
무릇 거룩하다고 하고 성사적이라고 함은 거기에 하느님이 계시는 것인데
두 분의 만남은 성령에 인도를 받은 만남이고 그 만남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두 분이 왜 만났겠습니까?
두 분이 아기를 밴 상태이고 그것도 둘 다 비정상적으로 임신한 상태였는데
처한 상황이 같고 관심사가 같아서 그런 것들을 같이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그런 인간적인 동병상련의 만남이었겠습니까?
인간적으로도 무엇을 함께 하고 함께 나누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흔히 얘기하듯 나누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되며,
혼자서 못하는 것을 같이 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두 분의 만남은 스스로의 계획이 아니고 성령의 주선입니다.
오늘도 보면 엘리사벳이 성령에 가득 차 외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마리아도 성령에 이끌려 엘리사벳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찾아간 것인데 바로 하느님께서 서로에게 하신 구원 업적을
같이 확인하고 찬미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만남도 서로 사랑과 친교를 나누거나 아픔과 슬픔을 나눌 수 있지만
성령에 의해 하느님 안에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보는
그런 만남이어야 하는데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본다는 것은 자기들이 받은
구원을 보는 것 이상으로 하느님을 보는 것이고 그분의 역사를 보는 거지요.
우리는 종종 구원의 결과인 행복은 보면서 구원을 주신 하느님을 놓치거나
만나 행복은 서로 나누면서 정작 행복을 주신 하느님은 놓치기 쉬운데
우리는 행복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이어야겠지요.
그래야지 한 번 소유한 행복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거룩하고 성사적인 만남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만남입니다.
자신의 행복이나 노닥거리는 만남이 아니라 건설적인 만남이어야 합니다.
이는 내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구원업적이 자기 안에 갇히지 않도록
나를 하느님 나라 건설의 도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신 하느님은 내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를 원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은 내가 당신 구원사업의 도구되기를 바라십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행복이나 기쁨이나 구원도 내 안에 갇히면 썩어버리고,
혼자 타는 불은 이내 꺼지나 같이 타는 불은 다른 것에 불을 붙이며
계속 살아나고 번지는 법이지요.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에 불쏘시개가 되고
나의 구원이 세상 구원을 이루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구원이 되도록
마리아와 엘리사벳처럼 우리 구원을 봉헌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나의 방문은?)
http://www.ofmkorea.org/124454
17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우리 기쁨의 정체)
http://www.ofmkorea.org/104334
13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내가 진정 반기는 것은?)
http://www.ofmkorea.org/53921
12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복덩이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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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성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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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중심을 잡으시는 하느님)
http://www.ofmkorea.org/4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