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저와 포르치운쿨라 행진단은 올해도 행진키로 하였고 오늘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 오늘 독서도 탈출기로 길을 가다가 불평을 하는 장면입니다.
길을 떠나면 모든 것이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음식기행을 하는 게 아닌 한 먹는 게 집에 있을 때만 못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길을 가면서 먹는 것이 또 얼마나 중요합니까?
먹지 않고 어떻게 힘을 낼 것이며 어떻게 걸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기에 우리가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중요치 않은 것은 없어도 그만이기에 불만일 것도, 불평할 것도 못됩니다.
그래서 이 중요한 것이 없거나 부족할 때 우리는 불평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신앙인이고 하느님과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고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자주 기도해야 할 것을 불평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해야 할 입으로 얼마나 많이 불평불만을 늘어놨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불만을 하고 불평을 합니까?
그것은 사람을 보고 하느님은 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면 불평하게 되어 있고 하느님을 보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보면 불평을 하고 하느님을 보면 기도하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불평을 하면서도 사람을 보고
하느님은 보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인간이란 자기에게 결핍인 것을 누군가 채워주기를 바라기 마련인데
그 결핍을 채워줄 존재가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의 결핍을 채워주고 만족케 할 존재이며 그래서
불평을 잠재울 분은 하느님이라고 오늘 탈출기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불평을 하니까 하느님께서 채워주신다거나
더 나아가서 불평을 해야 채워주신다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별로 안 좋은 말이 있는데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울지 않으면 젖을 안 준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우는 소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고,
엄마는 울어야지만 젖 주는 엄마고 하느님도 그런 하느님이라는 말입니까?
오늘 탈출기의 얘기는 울어야/불평해야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가 결핍을 느끼고 그래서 필요로 하는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 채워주시는 거라는 얘깁니다.
여기서 우리가 자신에 대해 성찰할 꺼리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불평을 합니까?
-나는 하느님께서 채워주시기를 청합니까?
오늘 독서를 복음을 연결시켜 묵상하면 또 한 가지 성찰할 꺼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길을 갈 때 빵이 더 중요한가 말씀이 더 중요한가입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빵의 결핍과 말씀의 결핍 중에서 어떤 결핍을 더 느끼고.
어떤 결핍을 더 채우려고 하고 불평합니까?
빵이 없어 배고플 때 불평을 하는데
말씀이 고플 때 내가 불평을 한 적은 있습니까?
빵이 없어 배고플 때는 음식이 주어지면 행복해졌는데
말씀이 고파 불행하다가 말씀 때문에 행복한 적은 있습니까?
-내 불평불만의 역사는?
-내 불평불만의 주 대상은?
-내가 지금 가장 불평불만을 하는 것은?
(불평, 그거 산만하니까 하는 거야!)
http://www.ofmkorea.org/108175
16년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뚝심 대단한 하느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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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자존심으로 하는 얘기는 사랑이 아니다)
http://www.ofmkorea.org/55243
11년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돌밭도 포기치 않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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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낭비하시는 하느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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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말씀의 열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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