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오늘 축일을 지내면서 관건은 왜 주님께서 변모하셨을까,
그것도 왜 세 제자 앞에서만 변모하셨으며
변모의 목적이 무엇이고 왜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낼까 하는 점들입니다.
변모의 목적은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보여주기 위해 무엇을 함은 우리가 보통 안 좋게 얘기하는데
오늘 얘기에서 분명한 것은 타볼산에 혼자 올라가시지 않고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다는 것이고 그것은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주님이 그러셨으니 보여주는 것을 마냥
나쁘게만 봐왔던 우리의 시각이랄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보여주는 것을 나쁘게 본 것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좋게 보이려 한 경우입니다.
위선의 경우이고 자기를 위한 것, 곧
자기를 좋게 보이고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겁니다.
전혀 사랑이 아니고 자기과시욕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과시를 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고,
그것도 고작 세 제자에게 과시하고자 하신 분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변모하신 것인데 먼저 세 제자를 위해,
다음으로 세 제자를 통해 모든 이에게 뭔가를 보여주시고자 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변모, 그것의 사랑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이에 대해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뽑힌 증인들 앞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어
제자들 마음속에서 십자가의 걸림돌을 없애 주셨으며,
머리이신 당신에게서 신비롭게 빛난 그 영광이,
당신 몸인 교회 안에도 가득 차리라는 것을 보여 주셨나이다.”
첫 번째는 제자들 마음속에서 <십자가의 걸림돌>을 없애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의 걸림돌이라!
십자가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자주 그렇게 얘기합니다.
같은 돌이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이라고.
너무도 멋진 말이 아닙니까?
십자가가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십자가를 싫어하고,
그래서 만나지 않으려 했는데 재수 없이 걸려서 걸려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든 사람이든 무엇에 재수 없이 걸리는 사람입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길을 가다가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것은 재수 없음입니까? 영광입니까?
그가 십자가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면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은 결코 영광이 아니고 재수 없음일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십자가를 디딤돌삼아 올라갑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디딤돌 삼아 어디로 올라갑니까?
천국으로, 천국의 하느님께로, 그래서
천국의 영광과 생명에로 올라가는 거겠지요?
디만 저에게 넘어지는 그 돌이 발판이 되게 해 주소서."
18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변모의 의도)
http://www.ofmkorea.org/132331
작은형제회
17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주님께서는 왜 세 제자들에게만)
http://www.ofmkorea.org/109221
작은형제회
16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우리는 덕으로 본다.)
http://www.ofmkorea.org/92344
작은형제회
15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모습이 변해야 한다면 주님이 아니라 우리가)
http://www.ofmkorea.org/80977
작은형제회
13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편애가 아니라 사명이다.)
http://www.ofmkorea.org/55480
작은형제회
12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우리도 그분처럼)
http://www.ofmkorea.org/33196
작은형제회
11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망가지는 사랑과 역 변모)
http://www.ofmkorea.org/5241
작은형제회
09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타볼 산에서, 문수봉에서)
http://www.ofmkorea.org/2957
작은형제회
08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본색이 드러나다)
http://www.ofmkorea.org/1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