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별을 선언하시며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는 그 길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솔직하고 정확한 토마스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른다고,
그래서 당연히 그 길도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사실은 토마스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대개 토마스 아니면 필리보가 나서기에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내색하지 않고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어쩌면 이 제자들과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를 가는지 모르다니!
자식이 가면 어디로 가나, 아비 있는 곳으로 가지!”하고
제법 아는 체하지만 사실은 이 예수가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인지
우리도 확신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토마스의 이런 대답에 주님께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당신이 분명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고,
지금 마침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나 있는 길을 따라 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당신이 아버지께로 가심으로서
당신이 길을 마련하시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가는 중에 누가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병원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거와 같이
당신이 지금 아버지께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더 나아가 당신이라는 길을 통해야지만
아버지께 갈 수 있다 하십니다.
수도생활 문헌, “Vita Consecrata(Consecrated life, 축성생활)”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표현하는데,
그 여정을 “A Patre ad Patrem"이라고 요약합니다.
“From Father to Father”,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께로”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은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여정인데
이 여정을 먼저 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길 삼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길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이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 갑니다.
이 길은 우리를 잘못 인도하는 법이 없어,
다시 말해서 가는 법을 참되게 알려주기에 진리이시고
이 길을 따라 가면 우리는 살 수 있기에 생명이십니다.
성녀 글라라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유언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들에게 ‘길’이 되셨는데,
그뷴의 연인이요 모방자(His lover and imitator)인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께서
말과 모범으로 이 ‘길’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며 가르쳐주었습니다.”
가는 길을 모를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
그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고마운데
글라라에게 있어서 프란치스코는 먼저 이 길을 가며
길을 가르쳐주는 길잡이였습니다.
우리도 서로 길잡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별을 선언하시며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는 그 길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솔직하고 정확한 토마스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른다고,
그래서 당연히 그 길도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사실은 토마스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대개 토마스 아니면 필리보가 나서기에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내색하지 않고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어쩌면 이 제자들과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를 가는지 모르다니!
자식이 가면 어디로 가나, 아비 있는 곳으로 가지!”하고
제법 아는 체하지만 사실은 이 예수가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인지
우리도 확신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토마스의 이런 대답에 주님께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당신이 분명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고,
지금 마침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나 있는 길을 따라 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당신이 아버지께로 가심으로서
당신이 길을 마련하시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가는 중에 누가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병원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거와 같이
당신이 지금 아버지께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더 나아가 당신이라는 길을 통해야지만
아버지께 갈 수 있다 하십니다.
수도생활 문헌, “Vita Consecrata(Consecrated life, 축성생활)”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표현하는데,
그 여정을 “A Patre ad Patrem"이라고 요약합니다.
“From Father to Father”,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께로”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은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여정인데
이 여정을 먼저 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길 삼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길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이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 갑니다.
이 길은 우리를 잘못 인도하는 법이 없어,
다시 말해서 가는 법을 참되게 알려주기에 진리이시고
이 길을 따라 가면 우리는 살 수 있기에 생명이십니다.
성녀 글라라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유언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들에게 ‘길’이 되셨는데,
그뷴의 연인이요 모방자(His lover and imitator)인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께서
말과 모범으로 이 ‘길’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며 가르쳐주었습니다.”
가는 길을 모를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
그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고마운데
글라라에게 있어서 프란치스코는 먼저 이 길을 가며
길을 가르쳐주는 길잡이였습니다.
우리도 서로 길잡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가고자 하는 이를 못 가게하고
자신도 못가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당신의 사랑을
부모를 통해 알아들으라고 우리 모두에게 부모를 선물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도 없고
자식 없이 부모 된 사람도 없는가! 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하느님답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이 부모를 통해 구겨진 사랑,
찢어진 사랑으로 잘못 표현되어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상처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묵상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이 여정을 먼저 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길 삼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아멘.
당신의 자녀를 하느님의 자녀답게 잘 키우신 부모님들을
하느님께서는 고마워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