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며칠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아이가 저한테 달려와서는 느닷없이
관심을 받고 싶어서 왔다는 뜻으로 얘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약간 놀라며 진심으로 한 말이라면
참 솔직한 아이구나 라는 생각도 했고 걱정이 되어
‘너 지금 관심을 받지 못해서 그러는 거니?’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기에 그러면 집에서 관심을 못 받느냐고 했더니
그것은 아니라고 하고 학교에서도 아니라고 대답하는 거였습니다.
그때 이 아이를 보면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데도
관심을 받고 싶고 더 받고 싶은 것.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외로움이라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외로움만을 생각기 쉬운데
독거노인과 같은 외로움도 처절하지만 많은 사람 가운데 있어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외로움도 처절하고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어쩌면 이것이 더 큰 외로움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은 무관심 가운데 버려질까봐 은연중에 두려움이 있고
그래서 관심 가운데 있어도 관심을 더 받고자 합니다.
그러니 일생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이 살아온 사람은
얼마나 불쌍하고 더 나아가 불행합니까?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일생을 산 사람이 불행하지 않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불행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행불행에 대해 체념했거나
아무 관심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경지에 오른 것일 겁니다.
그런데 오늘 어쩌면 평생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던 불구자가
예수님 앞에 나타나고 사람들 가운데 서게 되고, 관심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일어나 가운데 서라고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이 사람은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로 나가 설 수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도망쳤을 것이며
그 이전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계셨기에 사람들 있는 곳에 온 것이고,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무시하지 않을 한 사람만 있어도, 더 나아가
나를 인정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손 불구자는 사람들이 모인 회당에 나온 것인데
예수님께서 자기를 사람들 한 가운데 나오라고 하십니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그에게 어찌 하나 지켜보자
예수님께서는 보란 듯이 그를 가운데로 나오게 하여 치유고자 하십니다.
다른 때는 당신의 치유의 사실을 소문내지 말라고 엄명하시는 분이지만
오늘은 보란 듯이, 아니 보라고 일부로 가운데 세우시고 고쳐주시는 겁니다.
안식일을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주객이 전도된 사람들에게
좋은 일 하기보다는 늘 남의 트집만 잡는 교만한 사람들에게
짐을 덜어주기보다는 늘 짐을 얹어주는 가혹한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을 고집하는 사랑 없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게 하시려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하시려고 핵심을 찌르시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늘 핵심을 찌르시는 분이십니다.
자주 핵심을 놓치고 중요치 않은 것에 집착하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우리에게 사람이 안식일보다 중요하고
사랑이 그 어떠한 행위보다 중요하다는 핵심을 콕 찌르시는 분이십니다.
(멋대가리도 맛대가리도 없는 사람)
http://www.ofmkorea.org/146489
16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우리가 누군가를 가운데 세운다면)
http://www.ofmkorea.org/93178
15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고통의 성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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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아니라 사랑을 한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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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참으로 멋있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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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가운데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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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가운데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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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최악과 극단의 가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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