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부자와 과부는 참으로 대조가 됩니다.
둘 다 하느님께 봉헌을 하지만
과부는 하느님께 진실되고 오롯하지만
부자는 사실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하여 있습니다.
부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가난한 사람 돕기에 참여하지만
사실은 T.V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평판을 얻고자 함과 같고
한 남자 품에 있으면서 다른 남자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때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읽히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귀고 싶은데
괜히 그 옆에 있는 사람과 친한 것처럼 즐겁게 대화하거나
심지어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의 시선을 끌거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척합니다.
정결하지 않은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성(誠)의 차이입니다.
과부의 봉헌은 정성(精誠)을 다한 봉헌이지만
부자의 봉헌은 마음 내키지 않으면서도 체면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 중 조금을 던져주며 먹고 떨어지라는 식의 봉헌입니다.
그런데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하느님께도 불충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도 불충실한 것이며 자신도 분열케 됩니다.
왜냐면 무엇을 하든 정성을 다 할 때 그것과 내가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어 그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부가 가진 것 모두를 봉헌했다는 주님의 말씀은
결코 양의 문제가 아니라
精과 誠의 사랑의 문제이고
하나가 되어 전부를 바치는 사랑의 봉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이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 것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남겨두지 마십시오.”
둘 다 하느님께 봉헌을 하지만
과부는 하느님께 진실되고 오롯하지만
부자는 사실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하여 있습니다.
부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가난한 사람 돕기에 참여하지만
사실은 T.V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평판을 얻고자 함과 같고
한 남자 품에 있으면서 다른 남자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때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읽히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귀고 싶은데
괜히 그 옆에 있는 사람과 친한 것처럼 즐겁게 대화하거나
심지어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의 시선을 끌거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척합니다.
정결하지 않은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성(誠)의 차이입니다.
과부의 봉헌은 정성(精誠)을 다한 봉헌이지만
부자의 봉헌은 마음 내키지 않으면서도 체면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 중 조금을 던져주며 먹고 떨어지라는 식의 봉헌입니다.
그런데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하느님께도 불충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도 불충실한 것이며 자신도 분열케 됩니다.
왜냐면 무엇을 하든 정성을 다 할 때 그것과 내가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어 그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부가 가진 것 모두를 봉헌했다는 주님의 말씀은
결코 양의 문제가 아니라
精과 誠의 사랑의 문제이고
하나가 되어 전부를 바치는 사랑의 봉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이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 것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남겨두지 마십시오.”
精誠 은 최고의 능력 입니다.
순간 순간을 정성스럽게 합니다.
[빈자 일등]
노파가 기금사로
동전 두 닢으로 켠 불이
제일 오래 불이 켜 있었다는
불교설화에서도 말하듯 마음이 중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