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혼자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저는 마음이 약해 사람들의 부탁에 거절,
즉 “아니요” 소리를 잘 못해 일을 많이 맡습니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안 돼 어쩔 수 없이 거절은 해도
하기 싫기 때문에 거절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렇기 때문인지 무엇을 부탁했을 때
어떤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이 요즘 싫다는 소리를
아주 똑 부러지게 잘 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 편 어쩌면 저럴 수 있나 생각도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Post Modernism 시대를 일컬어
감성의 시대라고 애기하기도 합니다.
감성의 시대란 인간의 세 가지 요소, 이성과 감성과 의지 중에서
감성이 우리의 모든 것에서 주 기능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무엇에 대한 좋은 감정 또는 싫은 감정이
모든 선택이나 판단이나 결정에 있어서 열쇠 역할을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른이 하라거나 집단이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도 의지적으로 그것을 하고
근대에 들어서는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되면
이성에 따라 그것을 하지만
이 감성의 시대에는 아무리 어른이 순종으로 요구해도
아무리 그 일이 합리적인 일이어도 내가 싫으면 안 합니다.
바꿔 말하면 무엇을 하고 안 하고를 자기중심적으로,
즉 나의 싫고 좋음에 따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할 때 우리는 저처럼 마음이 약해서 하거나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좋고 싫음에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고린토서에서 바오로는 예수님도 자기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늘 예라고 하였음을 애기합니다.
우리가 세속에 대해서는 “아니요”라고 얘기해야 되겠지만
하느님께 대해서는 늘 “예”라고 해야 하고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도 반드시 “예”, “아멘”이라고 할 때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약속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약해 사람들의 부탁에 거절,
즉 “아니요” 소리를 잘 못해 일을 많이 맡습니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안 돼 어쩔 수 없이 거절은 해도
하기 싫기 때문에 거절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렇기 때문인지 무엇을 부탁했을 때
어떤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이 요즘 싫다는 소리를
아주 똑 부러지게 잘 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 편 어쩌면 저럴 수 있나 생각도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Post Modernism 시대를 일컬어
감성의 시대라고 애기하기도 합니다.
감성의 시대란 인간의 세 가지 요소, 이성과 감성과 의지 중에서
감성이 우리의 모든 것에서 주 기능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무엇에 대한 좋은 감정 또는 싫은 감정이
모든 선택이나 판단이나 결정에 있어서 열쇠 역할을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른이 하라거나 집단이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도 의지적으로 그것을 하고
근대에 들어서는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되면
이성에 따라 그것을 하지만
이 감성의 시대에는 아무리 어른이 순종으로 요구해도
아무리 그 일이 합리적인 일이어도 내가 싫으면 안 합니다.
바꿔 말하면 무엇을 하고 안 하고를 자기중심적으로,
즉 나의 싫고 좋음에 따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할 때 우리는 저처럼 마음이 약해서 하거나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좋고 싫음에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고린토서에서 바오로는 예수님도 자기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늘 예라고 하였음을 애기합니다.
우리가 세속에 대해서는 “아니요”라고 얘기해야 되겠지만
하느님께 대해서는 늘 “예”라고 해야 하고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도 반드시 “예”, “아멘”이라고 할 때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약속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직 Yes 만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해서는 늘 “예”라고 해야 하고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도 반드시 “예”, “아멘”이라고 할 때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약속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