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좋은 뜻인 것 같습니다.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말도 좋은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융통성은 어디까지 부려야 하나?
예외는 얼마나 인정될 수 있나?
사랑만큼 융통성을 부려도 된다.
사랑만큼 파계를 해도 된다.
사랑과 원융무애圓融無碍.
사랑과 자유.
사랑이 있으면 원칙도 좋고
사랑이 있으면 예외도 좋다.
사랑이 있으면 규율 안에 있어도 매이지 않고
사랑이 있으면 규율 밖에 있어도 방자하지 않다.
다윗이 먹어서는 안 되는 빵을 먹은 것이나,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시며 안식법을 넘어서시는 것이나,
다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말도 좋은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융통성은 어디까지 부려야 하나?
예외는 얼마나 인정될 수 있나?
사랑만큼 융통성을 부려도 된다.
사랑만큼 파계를 해도 된다.
사랑과 원융무애圓融無碍.
사랑과 자유.
사랑이 있으면 원칙도 좋고
사랑이 있으면 예외도 좋다.
사랑이 있으면 규율 안에 있어도 매이지 않고
사랑이 있으면 규율 밖에 있어도 방자하지 않다.
다윗이 먹어서는 안 되는 빵을 먹은 것이나,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시며 안식법을 넘어서시는 것이나,
다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안에 완전한 사랑은 있는 것인지?
참 사랑이라는 이유로 거짓 자유를 선포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신부님의 오늘 깊은 진리의 말씀 앞에 눈이 번쩍 뜨이네요..^^
저 진리를 깨닫지 못해 얼마나 많은 시간 방황했던지요..
원만 구족하고 융화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고
조금도 막힘이 없다는 원융무애圓融無碍..
대사께서는 자신의 득도대로
"만물을 융화하고 갇힘이 없는 대자유" 를 누리셨을까요...
정말 부러운 분입니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데 아무 거침이 없고
내 앞에 펼쳐지는 만상이 나를 위해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
서로 비추이는 관계속에서
나는 빛을 얻고 빛을 내는 구슬옥 되어 나를 비추고
나는 만상을 비추어 화엄의 세계를 이룬다는 화엄사상..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분별이 부질 없고,
이 생에 옳고 그름이 무엇이며,
참과 거짓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을 무기 없이 사로잡는 것이 사랑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사랑이라는 말뜻이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님도 사랑을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저의 모든 행동이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명심하고 사랑을 위한 일이 되도록 마음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사랑은 모든 것을 소통 시키고
해결 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