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은 짧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이 짧은 복음을 읽으면서 두 단어가 눈에 특별히 들어왔습니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다”는 말과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귀 담아 들으라고 하셨는데도
제자들은 당신이 돌아가실 것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 뜻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감추어져 있습니까?
주님께서 감추셨기에 감추어진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숨기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귀 담아 들으라고 꼬집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그 뜻이 감추어진 것은 주님 탓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입니다.
그 말씀의 진의를 알고 싶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못들은 척,
또는 못 알아듣는 척,
또는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척,
그 무엇이든 척하는 것입니다.
군 생활할 때입니다.
신병 하나가 저희 부대에 새로 왔는데
이 친구가 오늘날부터 못 듣는 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하기 싫은 것을 시키는 상황이면 못 듣는 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8월 뙤약볕에 벽돌을 찍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참들이 물 좀 떠오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못 듣는 척하는 것입니다.
고참들이 의논을 하였습니다.
연병장을 계속 돌게 하자고.
그래서 연병장을 돌게 하면서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돌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돌게 한 다음
연병장 정 반대 편쯤을 돌고 있을 때
작은 소리로 “그만!” 하였습니다.
그랬는데 그 친구가 그 작은 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는 안 듣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것이 탄로 난 것이지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지요.
이 말씀을 하시기 직전 기적을 하신 주님의 그 영광만 보고 싶지
수난은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난에 대한 얘기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알기 위해 묻는 것도 두렵습니다.
어쩌면 이리 저와 똑 같은지!
“그때에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이 짧은 복음을 읽으면서 두 단어가 눈에 특별히 들어왔습니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다”는 말과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귀 담아 들으라고 하셨는데도
제자들은 당신이 돌아가실 것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 뜻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감추어져 있습니까?
주님께서 감추셨기에 감추어진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숨기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귀 담아 들으라고 꼬집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그 뜻이 감추어진 것은 주님 탓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입니다.
그 말씀의 진의를 알고 싶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못들은 척,
또는 못 알아듣는 척,
또는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척,
그 무엇이든 척하는 것입니다.
군 생활할 때입니다.
신병 하나가 저희 부대에 새로 왔는데
이 친구가 오늘날부터 못 듣는 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하기 싫은 것을 시키는 상황이면 못 듣는 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8월 뙤약볕에 벽돌을 찍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참들이 물 좀 떠오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못 듣는 척하는 것입니다.
고참들이 의논을 하였습니다.
연병장을 계속 돌게 하자고.
그래서 연병장을 돌게 하면서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돌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돌게 한 다음
연병장 정 반대 편쯤을 돌고 있을 때
작은 소리로 “그만!” 하였습니다.
그랬는데 그 친구가 그 작은 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는 안 듣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것이 탄로 난 것이지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지요.
이 말씀을 하시기 직전 기적을 하신 주님의 그 영광만 보고 싶지
수난은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난에 대한 얘기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알기 위해 묻는 것도 두렵습니다.
어쩌면 이리 저와 똑 같은지!
예수님을 사랑 한다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길은....
‘고통 없는 성숙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고통은 어떻게 해서라도 피하고 싶고,
단점을 지적하는 소리는 듣기 싫고,
듣기 좋은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그러면서도 성숙하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다른 데서 찾을 것 없지요.
제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