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베드로와 바오로의 축일을 같이 지내고,
그것도 대축일로 지내는 이유는 아주 명백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남은 후손들로 첫 교회를 세우고,
바오로는 이민족의 스승이 되었나이다.”라는 감사송의 기도처럼
두 사도가 그리스도교의 두 주춧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주님은 왜 이 두 사도를 당신 교회의 주춧돌로 삼으셨을까?
그 당시 사람들 중 더 뛰어난 인물이 없었기에 둘을 뽑으셨을까?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를 선택한 것은 사뭇 이해가 갑니다.
지금까지는 당신을 모르고 박해를 하였지만
바오로만큼 열성적으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없고,
그러면서도 희랍어와 그 문화를 잘 아는 사람도 없기에
당신을 주님으로 믿게만 되면
바오로 사도만큼 이방인들의 사도로 적합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긴 해도 바오로 사도가 흠이 없는 것이 아니고,
열성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바오로 사도가 덕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교회의 주춧돌이요 기둥이 될 만큼 포용력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
베드로 사도는 또 어떻습니까?
결함으로 치면 더 결함이 많고,
교회의 주춧돌, 기둥이 될 인물은 영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주님께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심은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을 저버리고 자신을 과신할 만큼
유능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반석의 기준은 자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주님이요 하느님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오로 사도가 주님 교회의 주춧돌이 된 것도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 다 스스로 예수가 주님이라고 고백한 것이 아니고
베드로는 성부께서 친히, 바오로는 주님 당신이 친히
깨우치시어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은 내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것은
베드로 네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인데 알았으니
그것은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하며 당신의 교회의 반석삼고,
바오로 사도는 당신이 직접 나서서 당신을 주님으로 고백케 한 다음
당신의 종이요 사도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깊이 성찰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처음서부터 지금까지 실패의 연속입니다.
주춧돌이 시원치 않기 때문일까요,
주님의 교회는 지금까지 미완성이고
세웠다가는 허물어지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춧돌부터 작은 돌들까지
쉽게 부서지는 돌들이 우리 인간이고,
그래서 그 돌들로 세워진 당신의 집은 쉽게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그거 모르고 주춧돌 삼으신 것 아니고
그거 모르고 우릴 당신 집 돌 삼으신 것 아니니 다 당신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님은 대단히 고단하십니다.
쉽게 부서지는 우리로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으니 고치느라 고단하시고,
프란치스코처럼 당신 집 고칠 일꾼 대시느라 고되십니다.
저는 다시 깊이 성찰합니다.
최대의 실패자, 최다 실패자는 하느님, 당신이시라는 것을.
인간을 인간으로 창조하시고, 사랑하신 것부터
그래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것부터 실패의 시작이라는 것을.
사랑치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으면 실패도 없었을 텐데
인간을 사랑하시고 이 인간으로 교회를 세우심으로 실패자가 되셨음을.
그것도 대축일로 지내는 이유는 아주 명백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남은 후손들로 첫 교회를 세우고,
바오로는 이민족의 스승이 되었나이다.”라는 감사송의 기도처럼
두 사도가 그리스도교의 두 주춧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주님은 왜 이 두 사도를 당신 교회의 주춧돌로 삼으셨을까?
그 당시 사람들 중 더 뛰어난 인물이 없었기에 둘을 뽑으셨을까?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를 선택한 것은 사뭇 이해가 갑니다.
지금까지는 당신을 모르고 박해를 하였지만
바오로만큼 열성적으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없고,
그러면서도 희랍어와 그 문화를 잘 아는 사람도 없기에
당신을 주님으로 믿게만 되면
바오로 사도만큼 이방인들의 사도로 적합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긴 해도 바오로 사도가 흠이 없는 것이 아니고,
열성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바오로 사도가 덕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교회의 주춧돌이요 기둥이 될 만큼 포용력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
베드로 사도는 또 어떻습니까?
결함으로 치면 더 결함이 많고,
교회의 주춧돌, 기둥이 될 인물은 영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주님께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심은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을 저버리고 자신을 과신할 만큼
유능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반석의 기준은 자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주님이요 하느님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오로 사도가 주님 교회의 주춧돌이 된 것도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 다 스스로 예수가 주님이라고 고백한 것이 아니고
베드로는 성부께서 친히, 바오로는 주님 당신이 친히
깨우치시어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은 내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것은
베드로 네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인데 알았으니
그것은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하며 당신의 교회의 반석삼고,
바오로 사도는 당신이 직접 나서서 당신을 주님으로 고백케 한 다음
당신의 종이요 사도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깊이 성찰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처음서부터 지금까지 실패의 연속입니다.
주춧돌이 시원치 않기 때문일까요,
주님의 교회는 지금까지 미완성이고
세웠다가는 허물어지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춧돌부터 작은 돌들까지
쉽게 부서지는 돌들이 우리 인간이고,
그래서 그 돌들로 세워진 당신의 집은 쉽게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그거 모르고 주춧돌 삼으신 것 아니고
그거 모르고 우릴 당신 집 돌 삼으신 것 아니니 다 당신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님은 대단히 고단하십니다.
쉽게 부서지는 우리로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으니 고치느라 고단하시고,
프란치스코처럼 당신 집 고칠 일꾼 대시느라 고되십니다.
저는 다시 깊이 성찰합니다.
최대의 실패자, 최다 실패자는 하느님, 당신이시라는 것을.
인간을 인간으로 창조하시고, 사랑하신 것부터
그래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것부터 실패의 시작이라는 것을.
사랑치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으면 실패도 없었을 텐데
인간을 사랑하시고 이 인간으로 교회를 세우심으로 실패자가 되셨음을.
제가 요즘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 운동 중입니다. 뭘 다시 시작하냐구요?
회개의 근원은 누구로부터, 그리고 주체에 대한 바른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