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느님 사랑 안에 있다면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경계는 의미가 없습니다.
어제 묵상한 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거부하는,
그래서 지옥에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닌 한,
죽은 이도 하느님 사랑 안에 있고
살아 있는 우리도 하느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령의 날이라는 것이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뜻에서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이라면
적절치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모든 영혼들의 친교
또는 통교의 날이라 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혼을 위로한다면
지금 내 옆의 지친 영혼,
지금 내 옆의 외로운 영혼,
지금 내 옆의 방황하는 영혼,
지금 내 옆의 상처 받은 영혼,
지금 내 옆의 사랑 잃고 슬퍼하는 영혼을 위로함이
죽은 영혼을 위로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함은 죽은 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가 갈망하는 하느님께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위로해야 할 것은 그들을 보내고 슬퍼하는 우리이고,
오히려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을 살면서
아픈 사람 때문에 많이 마음이 아프고
저만 건강한 것이 많이 미안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찬류 세상에서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는지!
지난 주 마라톤을 전후하여 이런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오늘 독서의 욥처럼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 힘겹고 고통스러운 분들!
그래서 저는 그 즈음하여 쓰러지신 문 규현 신부님과
이 분들을 생각하면서 마라톤을 뛰었습니다.
마라톤을 뛰기 바로 전날 밤에 만난 분은
하느님께서 왜 자기를 데려가지 않으시고
아직도 살려두시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그래서
빨리 고통을 끝내고 하느님께로 가기를 갈망하는 영혼들은
죽음이 고통을 끝내고 갈망하던 하느님께로 가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고통 끝내고 하느님의 축복 안에 있는 영혼들이여,
아직도 이 찬류 세상에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영혼들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해주시오.
이 세상 모든 고통 중에서도 우리가 욥처럼 용기 잃지 말고,
오기와 끈기로 하느님 믿고 갈망하게 해달라고 빌어주시오.’
오늘 독서의 욥은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저는 오늘 위령의 날,
모든 아픈 영혼들이 이 욥처럼 주님을 믿고 갈망하며
마침내 사랑하는 하느님께로 나아가기를 기도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죽은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주님께 달려가지 못한 영혼이 있다면
그들도 속히 주님께로 달려가 주님의 축복 안에 머물게 되기를.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경계는 의미가 없습니다.
어제 묵상한 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거부하는,
그래서 지옥에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닌 한,
죽은 이도 하느님 사랑 안에 있고
살아 있는 우리도 하느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령의 날이라는 것이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뜻에서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이라면
적절치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모든 영혼들의 친교
또는 통교의 날이라 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혼을 위로한다면
지금 내 옆의 지친 영혼,
지금 내 옆의 외로운 영혼,
지금 내 옆의 방황하는 영혼,
지금 내 옆의 상처 받은 영혼,
지금 내 옆의 사랑 잃고 슬퍼하는 영혼을 위로함이
죽은 영혼을 위로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함은 죽은 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가 갈망하는 하느님께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위로해야 할 것은 그들을 보내고 슬퍼하는 우리이고,
오히려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을 살면서
아픈 사람 때문에 많이 마음이 아프고
저만 건강한 것이 많이 미안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찬류 세상에서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는지!
지난 주 마라톤을 전후하여 이런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오늘 독서의 욥처럼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 힘겹고 고통스러운 분들!
그래서 저는 그 즈음하여 쓰러지신 문 규현 신부님과
이 분들을 생각하면서 마라톤을 뛰었습니다.
마라톤을 뛰기 바로 전날 밤에 만난 분은
하느님께서 왜 자기를 데려가지 않으시고
아직도 살려두시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그래서
빨리 고통을 끝내고 하느님께로 가기를 갈망하는 영혼들은
죽음이 고통을 끝내고 갈망하던 하느님께로 가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고통 끝내고 하느님의 축복 안에 있는 영혼들이여,
아직도 이 찬류 세상에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영혼들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해주시오.
이 세상 모든 고통 중에서도 우리가 욥처럼 용기 잃지 말고,
오기와 끈기로 하느님 믿고 갈망하게 해달라고 빌어주시오.’
오늘 독서의 욥은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저는 오늘 위령의 날,
모든 아픈 영혼들이 이 욥처럼 주님을 믿고 갈망하며
마침내 사랑하는 하느님께로 나아가기를 기도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죽은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주님께 달려가지 못한 영혼이 있다면
그들도 속히 주님께로 달려가 주님의 축복 안에 머물게 되기를.
매일 매일 모든 영혼들과의 친교,통교의 날로 생각 합니다.
나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품 안에서 살고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