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도
불의한 재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얘기합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 불의한 재물이란 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불의한 짓을 하여 모은 재산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재물이란 그 자체로 불의한 것이라는 뜻인지....
어제 복음과 루카 복음의 전체적인 재물 이해를 볼 때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에게 고백성사를 주었습니다.
약간의 거짓말을 하여 이익을 취한 것에 대한 죄 고백이었습니다.
큰 죄도 아니고 되돌리기도 불가능한 이런 경우
사제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곤란합니다.
양심에 꺼려하는 그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마음에 영 걸리면 그것으로 가난한 이를 도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라고 하였는데
불의한 재물로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
깡패 짓을 해서 돈을 번 경우
그것으로 좋은 일을 하라고 하여 마음 편하게 해 주면
그 사람은 깡패 짓을 그만 두려하기보다는
좋은 일을 깡패 짓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를 경계하며
불의한 재물로 가난한 이를 도우라고 충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살아가며 부정하게 이득을 취하며 살아갑니다.
물건이 조금 나쁜 것인데도 좋은 것이라고 하며 팝니다.
우리가 어떤 이득을 취하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식의 부당 이득의 측면이 어디나,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살이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저희 수도자는 그런 돈벌이를 하지 않으니까 깨끗한 사람인 양,
그렇게 돈을 벌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나무랄 수 없습니다.
시골 가 땅만 파고 살지 않는 한 어쩌면 불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세상살이를 하는 신자들의 이런 고달픔에
연민을 가지며 위로하는 뜻에서(합리화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옛말을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오늘 복음에 적용해봅니다.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도
불의한 재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얘기합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 불의한 재물이란 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불의한 짓을 하여 모은 재산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재물이란 그 자체로 불의한 것이라는 뜻인지....
어제 복음과 루카 복음의 전체적인 재물 이해를 볼 때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에게 고백성사를 주었습니다.
약간의 거짓말을 하여 이익을 취한 것에 대한 죄 고백이었습니다.
큰 죄도 아니고 되돌리기도 불가능한 이런 경우
사제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곤란합니다.
양심에 꺼려하는 그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마음에 영 걸리면 그것으로 가난한 이를 도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라고 하였는데
불의한 재물로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
깡패 짓을 해서 돈을 번 경우
그것으로 좋은 일을 하라고 하여 마음 편하게 해 주면
그 사람은 깡패 짓을 그만 두려하기보다는
좋은 일을 깡패 짓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를 경계하며
불의한 재물로 가난한 이를 도우라고 충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살아가며 부정하게 이득을 취하며 살아갑니다.
물건이 조금 나쁜 것인데도 좋은 것이라고 하며 팝니다.
우리가 어떤 이득을 취하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식의 부당 이득의 측면이 어디나,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살이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저희 수도자는 그런 돈벌이를 하지 않으니까 깨끗한 사람인 양,
그렇게 돈을 벌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나무랄 수 없습니다.
시골 가 땅만 파고 살지 않는 한 어쩌면 불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세상살이를 하는 신자들의 이런 고달픔에
연민을 가지며 위로하는 뜻에서(합리화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옛말을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오늘 복음에 적용해봅니다.
열씸히 일 해서 돈 많이 벌어
하느님 나라 건설에 사용하면
행복 할 거예요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라도 친구들을 만들어라”
또 이런 말씀도 하셨죠.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부르겠다”
가족에게 못하는 속마음을 떨어놓을 수 있는,
넓은 이해력과 따듯한 마음, 그리고 고상한 사고를 품고 있어서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 앞에서는 굳이 감출 필요도 없는,
자주 만나지 못해도 늘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한 친구,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기쁨과 고뇌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이런 친구를 만들기 위해
재물이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아끼지 말아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