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청원장을 할 때의 얘깁니다.
청원기를 마치고 수련 들어가기 전에 저에게 하고 싶은 얘기나
후배들을 위해서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라고 하면
꽤 여러 형제가 '제발 꼭 필요하냐?'고 묻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형제들이 무엇을 사겠다고 허락을 청하러 오면 제가 거의 매번
그리고 모든 형제에게 '그거 꼭 필요해?'라고 묻곤 했는데
그거 묻지 말라는, 그것참 대답하기 곤란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후에도 계속 그 질문을 하였습니다.
괴롭겠지만 필요를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지요.
저에게 올 때는 그 형제들 말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오는 것인데
그 필요가 꼭 필요한 것인지, 형제의 필요가 프란치스칸 가난과
사랑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지요.
프란치스코는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거의 없었고,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생각하느라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프란치스코에게 한참 못 미치는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어도 필요한 것이 많고도 많지요.
그렇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 나라를 소유키 위해 세상의 것을 가지려 들지 않았고,
세상 것을 가지려 하지 않았기에 필요가 없었는데 이것이 그의 가난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이 애긍을 청할 때 수도원에 줄 것이 하나도 없자
수도원에 하나밖에 없는 성경을 주라고 하면서 성경에 사랑을 실천하라고
쓰여있으니 성경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는데 이것이 그의 사랑입니다.
수도원에 성경이 없다면 말이 됩니까?
성경을 안 읽는 수도자가 수도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수도원에 꼭 필요한 성경이지만 더 필요한 가난한 사람에게
줘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 저나 우리 수도원은 뭐 그렇게 필요한게 많은지,
더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지 못하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 공동체는 그저께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런 면에서 우리의 이상향입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욕심을 부리면 많이 가지고도 늘 궁핍한데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초대 교회 신자들 가운데에는 아무도 궁핍한 사람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는 궁핍한 사람이 없는 것뿐이 아닙니다.
이 공동체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궁핍함이 없고 일치와 평화를 살 뿐 아니라
은총을 누리는 천상의 삶을 미리 앞당겨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삶이 지금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것입니까?
이런 꿈을 지금 우리가 꾸면 안 되는 걸까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높이 나는 독수리는)
http://www.ofmkorea.org/212626
18년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사랑이 바람처럼 자유로우려면)
http://www.ofmkorea.org/120420
16년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초월치 않으면 자유롭지 않다.)
http://www.ofmkorea.org/88350
15년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불고 싶은 데로 부는 성령의 바람)
http://www.ofmkorea.org/77041
14년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욕망이 아니라 갈망이, 애착이 아니라 애덕이)
http://www.ofmkorea.org/61685
13년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바람에 이는 구름처럼)
http://www.ofmkorea.org/52662
12년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은총은 소유가 아니라 선물이다.)
http://www.ofmkorea.org/5746
10년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http://www.ofmkorea.org/3901
09년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내려 놓고 올라 가다)
http://www.ofmkorea.org/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