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는 강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 경구는 '어리석은 자는 작은 것도 크게, 현자는 큰 것도 작게'와 함께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며 인생 철학이고 그저 철학적인 표현일 뿐 아니라
신앙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과 맥이 통합니다.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에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우리가 산 정상에 올라가 느끼는 것이 내가 그 힘든 산을 정복했다는
뿌듯함뿐이라면 그 영적인 수준은 낮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뿌듯함보다는 위에서 내 살던 곳을 내려다보며 내가 저곳에서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살았음을 반성하고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 초월 정신을 배울 때 그 수준이 높다 하겠지요.
그리고 이 수준을 기도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 청원 기도의 측면에서 보면
이 세상에서 제게 필요한 것을 주십사고 기도할 수 있지만
프란치스코가 생애 말년에 형제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보나벤뚜라가 '하느님께 이르는 정신의 여정'을 얘기한 것처럼
우리의 정신이 하느님께 이르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도 있겠지요.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가련한 우리로 하여금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늘 원하게 하시어.
내적으로 깨끗해지고, 내적으로 빛을 받고, 성령의 불에 타올라,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여 오로지 당신의 은총으로만 당신께 이르게 하소서."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할 정상은 어디이어야 할까요?
하느님 당신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 기도는 이 정상을 향해 가게 해달라는 기도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은 땅 위의 기도를 하지만 간혹 하늘 여정의 기도를 하다 보면
'간혹'이 '자주'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요?
또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우리 기도의 여정과 정신의 여정이 마침내
초월에 초월을 더하여 하느님께 도달하지 않을까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믿음을 주는 사람.)
http://www.ofmkorea.org/213448
18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하느님은 좋은 핑계꺼리?)
http://www.ofmkorea.org/120523
17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영적 식별의 기준들)
http://www.ofmkorea.org/102528
16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나도 하느님의 증인이 될 수 있을까?)
http://www.ofmkorea.org/88406
15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나는 누구에게 순종하는 사람?)
http://www.ofmkorea.org/77103
14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주님의 구원 의지와 우리의 생명 의지)
http://www.ofmkorea.org/61725
13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사랑의 순종이 되기 위하여)
http://www.ofmkorea.org/52703
12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다른 order는 받지 않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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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혓바닥의 기술, 하느님의 말씀?)
http://www.ofmkorea.org/5060
10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듣는대로)
http://www.ofmkorea.org/3908
09년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닮고 싶습니다.)
http://www.ofmkorea.org/2431